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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가 아무리 힘겨웠어도 새해 첫날에 잠시라도 시름을 접고 희망에 들뜨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올해는 신년 분위기를 누릴 마음의 여유마저 빼앗긴 국민들이 많다. 그만큼 지난 2014년은 큰 사건과 사고가 이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새해맞이가 우울한 젊은이들이 유난히 많다. 취업난에 고통받는 20대 외에도, 지난달의 수시 결과가 나빠서 정시에 기대를 걸고 기다리는 수험생들도 그러하다. 수시에 합격한 학생은 입시 굴레를 홀가분하게 벗어났지만, 정시 발표를 기다리는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에 휩싸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적지 않은 이들이 벌써 재수를 결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새해를 전망하며 많은 분들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정치개혁이나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우리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어 한층 책임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이런 목소리가 책임 소재를 엄정히 가리려는 노력을 좌절시키는 무책임한 양비론으로 흐른다면 물론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모든 이가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는 차원의 문화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바뀌는 일은 곧 사람을 제대로 교육하는 일과 통한다. 그만큼 교육 문제는 우리 사회가 위기를 극복할 역량을 키우느냐를 가름할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지난해의 수능 논란에 이어 나온 정부 대책은 적어도 영어에 관한 한 실망스러울 뿐이다.

교육당국은 수능 영어를 2018년부터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공언했지만, 세간의 반응은 차가울뿐더러 심지어 이 약속을 믿지 않는 분위기도 퍼져 있다.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그 명칭에 어울리게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과 자격을 검증하는 절대평가체제가 아니라, 남을 제치고 더 좋은 대학을 가려는 격심한 경쟁을 반영한 상대평가체제이다. 그런데 상대평가체제라는 큰 틀을 그대로 둔 채 영어만 절대평가로 바꾼다면 부작용만 터져 나올 것이 뻔하다. 아직 수능 개선에 관한 논의를 지켜볼 여지는 있다지만, 이미 근본적인 문제는 까맣게 망각된 느낌이다. 정책 결정권자들이 일선교사, 영어교육 전문가를 포함한 관련 당사자의 중지를 모으려는 생각이 과연 있는지 궁금하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2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4 전문대학 진학상담회'에서 입시 전문가로부터 입시전략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 : 경향DB)


입시정책의 불투명성은 지난 정권부터 추진된 국가공인영어시험(NEAT) 개발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가공인영어시험은 올해 예산 편성에서 아예 빠짐으로써 수능을 대신할 2, 3급은 물론이고 토익, 토플을 대체할 1급도 사라지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낭비하고 만 것이다. 특히 수능을 대체하려던 구상은 애초부터 실패가 불보듯 했다는 점에서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은 물론이요, 이를 뒷받침한 전문가들의 잘못 또한 밝혀야 한다.

국가공인영어시험은 1년에 24회(회당 5만명) 시험을 실시하여 60만명에 달하는 수험생에게 연 2회의 응시 기회를 주어 수능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고3이라는 동일집단을 대상으로 무려 연 24회의 시험을 동등한 난이도로 맞춰낼 수 있는 평가기관은 지구상 어느 구석에도 없다. 더구나 단 1점에도 민감한 한국의 대학입시를 두고 이런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 기막히다. 흥청망청 예산을 쓰기 전에 미리 전국의 영어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거나 관련 단체들에 공개적인 의견 조회만 했어도 문제는 분명하게 부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큰 밑그림 없이는 어떠한 땜질 처방도 통하지 않을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다. 중등교육의 무능과 파행을 극복하고 미래 세대의 잠재력과 창조력을 키울 입시개혁을 해야 한다. 그것은 부분적인 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 너무 급격한 변화의 위험성을 마땅히 경계하되, 문제의 급소를 찌르는 정직함과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논의구조를 만들어 탄탄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묘책을 쉽게 내놓기 힘든 현실에서, 교육관료와 그에 동조하는 ‘전문가’들이 독점하는 의사결정구조로는 어떤 변화든 부작용밖에는 건질 것이 없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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