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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광주비엔날레를 보고 왔다. 광주까지의 먼 여정과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전시를 둘러보았다. 문득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광주를 오갔던 그간의 날들이 거칠게 스친다. 올해로 11회째인 광주비엔날레는 그간 22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동안 광주비엔날레는 광주 화단, 나아가 한국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비엔날레를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의 그 많은 미술인들에게 비엔날레는 또 무엇인가?

현재 한국에서는 무려 4개 이상의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큰 예산이 소요되는 행사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다. 세계에서는 매년 약 100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고 또 그만큼의 아트페어가 열린다. 그것들을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세계적인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를 둘러보는 것이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능력(?)있는 자들만이 전 세계를 무대로 그 같은 행사를 보러 다닌다. 이른바 미술계의 귀족들이다.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경향과 담론, 전시유형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관람하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전시들은 상당한 피로감을 준다. 현학적이고 난해한 주제와 글들, 비슷비슷한 작품들, 동일한 스타일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인상이며 그것들은 전 세계 미술계를 동일한 경향으로 지극히 납작하게, 평면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알다시피 비엔날레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전시로서 문화 전반적으로 시급한 근본적인 이슈들을 다룬다. 특히 비엔날레는 1989년 무렵부터 시작된 ‘지정학적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동시대 미술’의 측면으로 부상했다. 마시밀리아 노조니의 지적처럼 오늘날 비엔날레는 새로운 지식의 ‘무역로(trade routes)’가 되고 있다. 분명 비엔날레는 ‘예술제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끊임없이 수정하며 동시대 미술에 대한 담론을 보다 탐구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으로 변화시키는 한편 복잡한 문화와 각기 다른 지역들에 대해 인식할 기회 또한 제공해준다. 동시대 미술계의 주체가 주로 동시대의 비엔날레 전시들이 제공하는 동시대성에 대한 경험에 의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세계 미술 현장을 좀 더 다루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은 비엔날레에서 아트페어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주제는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이다. 제목부터 난해하다. 스웨덴 출신의 예술감독인 마리아 린드는 제8기후대를 “현실에 없는 예술만이 펼쳐내는 상상적 세계와 공간”이라고 정의하면서, “제8기후대는 이러한 작품이 개입하는 것, 중앙무대로 다가가는 바로 이 특정한 방식을 통해 미술을 위치시키는 것을 하나의 포부로 품고 있다. 이것은 기술 그 자체의 관련성에 대하여 재활성화하거나 가속화한 이해와 연관된 미래의 행위 주체성에 관한 발언”이라고 서문에 쓰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전시 역시 해당 주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감동을 주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작품을 찾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현재와 미래의 미술이란 무엇인가와 미술의 사회적 실천 기능을 찾아본다는 취지를 내세웠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또 나아가 그에 대한 미술적 대안이나 비평적 초점을 작업을 통해 찾기도 쉽지 않았다고들 지적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비엔날레는 왜 계속해야 하는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비엔날레를 치르기 위해 투여하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 등을 생각해보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비엔날레가 지닌 여러 장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보면서 매번 유사한 대규모 전시를 반복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해졌다. 행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로 인해 무엇을 얻고, 무엇이 변했는가가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비엔날레는 거대한 제도가 되었고 그저 형식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2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열악한 광주 화단이나 변함없는 비엔날레관 주변의 스산하고 조악한 경관을 보면서 아무런 변화도 초래하지 않는 비엔날레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비엔날레를 거듭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 감각의 화석들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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