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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계를 뒤흔든 일련의 사건들이 개인의 윤리는 물론 집단 윤리의 부재와 결핍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법은 개인과 집단의 윤리를 최소한의 수준에서 합의하는 공공의 약속이다. 최근 미술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술시장 개혁과 미술진흥 관련 입법 논의가 일고 있다. 문체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 관련 법률과 미술진흥법 제정 논의가 그것이다. 이번 일은 이중섭, 박수근 등 근대 작가들을 비롯 천경자, 이우환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끊이지 않는 미술계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책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미술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술품 유통업 허가 및 등록제, 미술품 이력관리제, 미술품 감정사제도 및 미술품감정업 등록제, 화랑·경매·감정 겸업 금지, (가칭)국가미술품감정연구원 설립, 위작 유통 관련 범죄 처벌 명문화, 특별사법경찰제 도입 등의 구체적인 개혁입법안들이 논의 과정에 있다. 화랑과 경매, 감정 등 3개 영역의 주체들이 겹쳐 있는 것은 한국미술계의 문제점으로 꼽혀왔는데, 이 3각 연대체를 상호견제와 균형의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미술시장 이해당사자들의 복잡한 구도가 얽혀 있어 입법화 과정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칫 시장 주체들을 개혁 대상으로 내몰아 역풍을 맞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장 안팎의 합리적인 논의로 새로운 개혁의 주체를 세우는 데 뜻을 모을 시점이다.
미술진흥위원회와 한국미술재단 설립 조항을 둔 미술진흥법 논의에도 몇 가지 논쟁점이 있다. 하지만 일부 우려가 있다고 해서 입법 취지 자체를 낮게 평가할 일은 아니다. 이미 예술장르별로 진흥법 제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술장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중대 조치가 입법형태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서 차분하게 논의의 장을 열어 볼 일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문화예술진흥법을 근거로 한 미술관 지원정책과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그리고 예술경영지원센터 사업이 상충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비해 꼼꼼한 상황 점검으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 법안은 창작과 전시로 이뤄지는 표준계약서 및 아티스트 피 규정 등 다양한 지원과 규제 조항을 담고 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거래되는 경우 그 이익의 일부를 저작권자에게 지급하는 작가보상금 제도 논의도 있다. 전시회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제도도 준비 중이다. 10년 전만 해도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주느냐’며 볼멘소리하던 공무원들의 말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든다. 영화계나 공연계가 출연료로 예술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처럼, 미술계에서도 출품료 개념을 정착해야 한다. 핵심은 한국미술진흥재단이다. 미술창작과 전시 및 유통, 미술문화 전반, 미술인력 양성, 미술은행 관리 등을 총괄하는 거대 기구가 탄생한다. 기존의 제도와 중복이나 상충하는 바가 없는지 현장의 의견을 들어 꼼꼼하게 점검해야 할 대목이다.
예술은 사회체제 내에서 작동하는 규범이자 규칙이다. 따라서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본질과 현상을 담은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 내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평이다. 예술비평은 예술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윤리의식을 기반으로 가치의 문제를 논하는 공론의 장이다. 하지만 비평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특히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목에서는 더 그렇다. 이런 경우의 문제해결을 위해 작동하는 제도가 바로 법률이다. 지금껏 개인의 윤리에 주목해서 특정 사안을 비판하기 바빴던 한국미술계로서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윤리를 재정립한다는 차원에서 미술개혁 입법 논의에 관심을 가지고 공론을 모을 일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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