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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 비상등이 켜졌다. 4·3 재·보선 결과가 청와대와 정부·여당에 대한 경고라는 데 반론을 찾기 어렵다. 문제는 방법과 실행이다. 때맞춰 당으로 돌아온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하 김부겸)이 조명되고 있다. ‘김부겸 역할론’이다. 

김부겸은 여러모로 애매한 정치인이다. 28년 정치이력에도 한마디로 리더십을 규정하기 어렵다. 물론 스스로도 경계인을 자처했다. 민청학련 세대와 86 전대협 세대의 틈에 있었다. 민청학련 선배들처럼 사형선고도 받지 않아 극적 스토리도 없고, 86그룹 후배들처럼 노선투쟁도 하지 않아 탄탄한 조직도 없다. 구시대의 막내도, 새시대의 맏형도 되지 못했다. 김부겸은 보수의 엘리트로 꼽히는 대구 경북고 출신이다. 그러나 서 있는 곳은 개혁 진영이다. TK(대구·경북) 주류지만 실존적으론 비주류다. 1991년 ‘꼬마’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출신 이미지가 강하다. 평생 불일치의 연속이다. 게다가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의 아들도 아닌 ‘아버지 없는’ 당내 유일한 대선주자다. 눈칫밥에 익숙하다. 김부겸의 장점인 통합·갈등조정 능력이 생존술로 치부되고, 1순위(주류)가 성에 차지 않아야 찾게 되는 2순위(비주류)였다. 

‘김부겸 역할론’은 기대치일까, 실체가 있는 걸까. 김부겸은 오랫동안 여권의 하로동선(夏爐冬扇·훗날을 위해 급하지 않은 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당장 쓸모없지만 나중엔 필요한 존재. 여권은 당장 필요하고 쓸모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플랜A’와 완전히 다른 ‘플랜B’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김부겸은 하로동선(기대치)에서 플랜B(실체)로 가는 길목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 대표를 제외하면 ‘정치하는’ 의원이 보이지 않는다. 민심 체감도가 높은 초선 의원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고, 유력 대선주자 대부분은 당 밖에 있다. 4선 의원, 장관 이력까지 더한거물급 정치인으로 당 존재감 부각에 기여할 것이라는 게 김부겸 복귀의 첫 기대치다. 대구·경북에 대한 여권의 위기의식은 4년 전보다 커졌다. 지역에선 “문재인 정부에 근본적 불신이 커졌다”고 토로한다. 내년 대구 총선이 김부겸에게는 생존 바로미터, 여당엔 전국정당 교두보, 문재인 정부엔 탈87체제 출발선이라는 것. 두번째 기대치다. 정부 부처가 청와대에 가려져 있다는 비판이 가라앉지 않는다. 민주당 정부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럼에도 재난 대응, 불법 동영상 유통 대책 등 김부겸 장관이 이끈 행정안전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씨 뿌렸던 시스템정치를 싹 틔웠다.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을 당에 접목할 수 있으리란 전망, 세번째 기대치다.

김부겸은 하로동선에 머물지 않고 플랜B가 될 수 있을까. ‘대선주자의 귀환’이라는 첫 기대치부터 짚어본다. 무엇보다 결기가 필요하다. 당 대표 출마 문제를 대통령에게 떠넘겼던 그런 정치력으론 대선은 힘들다. 의원들의 당부를 옮긴다. “관계에 너무 치중한다. 조정자 말고 추진자가 돼라” “무게에 맞는 브랜드를 만들어라” “과감해져라. 그래야 (김부겸) 사이즈를 가늠하고 지지자들도 결집한다”….

민주당에서 ‘영남 출신’은 영남 개혁세력과 호남 지지층의 결합을 이뤄내는 최상의 대선 전략이다. 중도·개혁 보수층 확장의 토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남은 민주당에 가혹한 현실이 됐다. 김부겸도, 지도부도 당 영남특위 강화를 우선 목표로 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부겸’이라는 인물 효과가 지난 총선 이후 3년 동안 세력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객관적 환경도 좋지 않다. 합리적 보수라면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이라고 막말하는 극우정치에 등 돌릴 법한데도 한국당 지지율은 상승세다. 합리적 보수·중도층은 현실정치에서 발언권이 없거나 허상이 아닐까 의아할 정도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패배한 정당에 승리하는 개인은 없다. 대구에서 ‘김부겸 플러스알파’를 달성할 수 있을지가 정권 재창출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장관 출신이라는 기대치다. 김부겸에겐 신한국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닌다. 자서전 제목도 오죽하면 <나는 민주당이다>일까. 장관 2년의 소회를 물었다. 곧바로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막중해졌다”고 답했다. ‘손님’이 아니라는 말로 들렸다. 당청은 ‘민주당 정부’라는 대선 공약이 무색할 만큼 주종관계로 굳어졌다. 김부겸 ‘장관’의 복귀가 당청에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학습효과가 있다. 각자도생하다 폭망한 두려움이지. 당이 정부와 생각이 다르다면 집단적 목소리를 모아 청와대에 전달할 것이다. 다만 절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와 차별화에만 급급하면 우리의 가치는 물론 세력 전체가 엉망이 된다”고 짚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다. 한국당 일각에서 ‘징하게 해처먹은 세월호 유족들’이란 망언을 쏟아냈다. 좋은 정치의 부재를 통탄했던 지난 5년으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크로케의 ‘모든 역사는 현대사’란 말을 새긴다. 세월호 참사는 좋은 정치의 가능성을 여전히 묻고 있다. ‘플랜B’는 정치권 모든 ‘김부겸(들) 역할론’의 미래여야 한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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