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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인사 실패’는 단순히 검증시스템의 문제이거나 ‘인사 라인’의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사 조국·조현옥 수석이 물러나도 문제는 쉬 교정되기 어려울 것 같다. 현 정부를 받치고 있는 세력의 근본적 한계와 인사권자의 관점 문제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연속된 ‘인사 실패’가 발하는 정치적 효과가 무엇인지 정부·여당만 모르고 있다. “위법이 아니다”라는 변명은 사실일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한 헛소리다. 어떤 논자들은 위법이 아니라는 말에 “법이 아니라 국민 감정이 문제”라고 반박했지만 이 또한 부족한 말일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대다수 서민의 삶의 경험이 반영된 집합적 이성과 공동체의 공통감각이다. 한국 사회의 세대와 계층 사이에 깊게 파인 불평등 해소의 방향 문제다.

총선을 딱 1년 앞둔 지금, 다시 냉소와 정치혐오가 번져간다. 10% 부자 정당 민주당도, 1% 수구 부자 자유한국당도 지지할 수 없는 청년과 서민들은 마음을 줄 데가 없다. 일전에 만난 한 20대 대학원생은 폐부를 찔렀다. 나름 열심히 촛불을 들었었다는 그는 조금 귀찮다는 듯 말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은 부자정권 시즌 2 아닌가요?” 

김용균씨는 월급 211만원을 받으며 일하다 24세의 나이에 죽었다. 택배기사들은 하루 15시간씩 일하고 월급 15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이번주 대통령 지지율을 올리는 데 일조한 특수진화대 소방관들은 하루 일당 10만원을 받는 비정규직이다. 이런 이들이 얼마나 일하고 어떻게 해야 돈을 모으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이 촛불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합의한 ‘기준’이지, 청와대의 수십억 자산가들이 35억원 주식 투자자에게 발부하는 ‘합법’이 기준이 아니다. 그들 사이의 정쟁 중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미선 헌재 재판관 후보 문제를 둘러싼 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법-불법’ 말싸움도 정치의 본질을 가린다. 10% 부자들의 당이 ‘진보’를 표방하고 그보다 더 한 토호와 투기세력의 당인 한국당이 서민을 대변하는 양 쇼하는 정치가 지겹다. 

2년간 ‘적폐청산’이 귀가 따갑게 외쳐지는 와중에도 한국당은 ‘협치’의 대상이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암묵적 야합은 모든 개혁 과제를 허공에 날렸다. 이제 선거법 개정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상속받은 재산과 세습된 기회를 잘 굴리고 금융자본주의에 편승하여 부를 이루는 것을 ‘능력’이라고 부르는 이데올로기와, 세습형 또는 건물주형 ‘능력자’가 법·정치권력·명예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사회를 바꿔보자는 것이, 그리고 노동의 권리와 혁신의 가치로 사회를 다시 디자인하자는 것이 촛불 아니었나.     

정부·여당은 노동법 개악마저 시도하고 있으니, 이 정부는 촛불정부가 아니라 촛불횡령정부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30%대로 회복된 한국당의 지지율이 보여주듯, 세대·계층·지역을 넘어 부패하고 무능한 ‘부자정권 시즌 1’(시즌 1은 조금의 단속(斷續)을 거쳐 70년째 지속되고 있다)을 잠정 중단시켰던 촛불의 동맹은 와해되고 말았다. 그 와해의 책임은 물론 비핵화 문제 이외엔 아무 일도 안 한 현 정부·여당에 있다.(한귀영,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엄중한 민심’ 한겨레 2019·4·5) 

경제민주화와 정치개혁을 바라는 마음은 집권당과 기득권체제에 기만당하고 있다. 제도개혁이 또 무산됐으니 다시 아래로부터의 힘겨운 운동이 필요해진다. 환멸을 견디며 촛불의 가치를 중심으로 또 시민의 힘을 결집해야 한다. 

더 많은 여영국들이, 그리고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새롭고 당찬 반기득권 젊은 정치인도 필요하다. 29세의 여성 정치인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미국의 젊은 세대에 큰 공감을 일으키고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의 소수성이나 가난한 바텐더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의 보편적 가치와 대학 등록금 무상화 및 부유세 같은 청년세대에 희망을 주는 진보적 정책 덕분이다. 

우리 사회에도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인재가 많이 있을 것이다. 1년 남은 총선에 대비하여 새 청년 정치인 진출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될 때가 아닌가? 언론인·지식인들은 그들을 찾아내고 부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청년들도 단결해서 자신들의 대표자들을 국회에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부유세, 토지공개념, 기본소득, 성평등, 환경정의 같은 가치로 단결하여 1% 특권계급과 10% 부자들의 카르텔에 파열구를 내도록 힘을 합쳐 지혜를 짜야겠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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