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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상당수 미술인들의 소원이 서울 중심가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세워지는 것이었다. 과천의 깊은 산속에 있는 미술관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근처 동물원과 놀이공원의 짐승 울음소리와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전시를 관람하러 가는 길은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곳까지의 길고 먼 길을 가야만 했고 또 그렇게 가는 날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떠나야 하는 일이었다.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도 코끼리열차를 타거나 꽤 먼 길을 걸어야만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 점지해준 곳이 이곳이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는 이 길을 걸어서 한 번이라도 가봤을까?

그래서 우리도 유럽처럼 시내를 걷다가 미술관으로 불쑥 찾아들어가는 꿈도 꿔보고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서 전시를 보거나 일과를 끝낸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며 좀 고상해 보이는 문화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여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만들려는 노력이 꽤나 오랫동안 진행되었고 그 결과 이명박 정부 들어 무슨 비밀작전처럼 전격 발표되어 그 숙원이 드디어 해결되었다. 그렇게 해서 사간동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섰고 또 몇 해가 지났다. 그 전후 동안 여러 명의 관장이 업무역량 부족이나 채용비리 등의 이유로 모두 쫓겨나다시피 공직에서 물러났고 우여곡절 끝에 외국인 관장이 취임했다.

관장 선임에서도 많은 파열음이 있었다. 최종 후보에 오른 후보자들 중에서 끝내 선임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더니 갑자기 외국인 관장을 임명해버렸다. 후보자들 중에서 적임자가 없었다거나 온갖 투서가 난무해서 도저히 뽑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과연 그랬을까? 나로서는 누군가가 아마도 국내 미술계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 관장을 앉히고 대신 미술계를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따름이다.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를 낙점한 궁극적인 이유가 궁금하기만 하다. 그리고 또 1년의 시간이 지났다. 분명 그동안 우리는 사간동 길을 걷다 이 미술관에 들러 다양한 전시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과천에 있는 미술관까지의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 미술관이 들어서면 근사한 혜택이 벌어지고 대단한 볼거리와 수준 높은 전시를 편리하게 향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꿈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우선 수준 높은 전시가 거의 없었고 이전과 다른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여러 전시들이 무슨 행사를 치러내듯 산만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구나 미술관의 조직개편을 둘러싼 잡음과 함께 상당수 직원들이 떠났으며 또한 올해 기획된 전시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마리 관장이 올해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의욕적으로 발표한 앤디 워홀전과 피카소전, 이집트 초현실주의 미술전 등이 사전협의 미흡과 예산 미비 등의 사유로 갑자기 취소, 연기되었다. 그러고는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술관이 전시를 기획한다면 최소 1~2년의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하는데 전시를 몇 달 앞두고 느닷없이 취소하는가 하면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의 현실이다. 더구나 모 미술전문지가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리 관장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싣고 난 후 지속되던 광고가 곧바로 끊어졌다고 한다. 2016년에는 총 14페이지에 걸쳐 광고가 게재되었는데 올해에는 단 한 건도 광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술관 측의 한 인사는 “관장을 나가라고 해놓고 광고를 기대하냐”는 말을 했다고도 한다.

나라꼴이 엉망이다 보니 국립현대미술관 돌아가는 모양새도 판박이가 되어 닮아가는 모양이다. 미술관이 지어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곳에 놓여있다고 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결국 사람이다. 누가 그것을 운영하는가, 어떤 인식과 태도로 운영하는가가 사실 더 핵심적인 문제다.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도 결국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잘못 뽑아 생긴 일이 아닌가? 선거를 앞두고 우리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이유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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