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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육상 계주선수로 뛰었고, 크게 애쓰지 않아도 체력장 등급이 꽤 높게 나왔으며, 3단 뜀틀이나 몸을 뒤틀어 넘는 높이뛰기도 제법 했다. 손목으로 배구공을 서브하는 스킬도 곧잘 익혀 따라하는 편이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몸을 움직여 어떤 목표를 뛰어넘었을 때의 그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운동에 소질이 있으며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든 내가 운동을 시작하기만 하면 다시 그때처럼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차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달리기 하나는 자신 있었으니까.


그런데 땡, 전혀 아니었다. 착각이 깨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회사 체육대회 날 이어달리기 순서였다. ‘보란 듯이 빨리 들어오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자신있게 뛰기 시작했는데 어라?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젖 먹은 힘까지 짜내어 뛰어도 내가 앞서나가고 있지 않았다. 여자들끼리 뛰는 중이었는데도 생각과 달리 격차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뛴 직후부터 꽤 오랫동안 온몸이 쑤시고 허벅지가 당기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사진제공: <허리베개 다이어트> (후쿠츠지 도시키 저, 시소북스)(출처: 경향DB)


그때 깨달았다. 학창 시절의 내가 운동신경은 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간단한 달리기마저 힘들어할 정도로 기초 체력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과 등산 갔을 때 나 혼자 헉헉거리며 뒤로 처졌던 건 전날 마신 술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오재미, 피구, 얼음땡 등 몸으로 하는 모든 운동과 놀이를 즐기던 초등학생이었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운동은커녕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전형적인 여중·여고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기 때문이다.


남자 중·고등학교 운동장은 쉬는 시간마다 몰려나가 농구, 축구 등을 하며 뛰어다니는 학생들로 가득하다던데, 여자 고등학교는 전혀 다르다. 여고의 운동장은 일단 크지도 않을뿐더러 체육 시간을 제외하면 한산하기 그지없다. 


여고생들은 매점을 갈 때와 급식을 먹으러 갈 때 외에는 절대 뛰지 않는다.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쿠션을 껴안고, 슬리퍼를 끌고 다니면서, 친구와 팔짱을 끼고 어슬렁어슬렁 복도와 운동장을 거니는 것이 활동에 속한다. 가히 숨쉬기만이 운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엉덩이 무거운 여고생들에게 체육 시간은 어떻게든 뛰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인 동시에 잘하는 몇몇 아이들을 구경하면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한국 여성의 대다수는 청소년기에 운동하는 습관을 전혀 만들지 못하므로 제대로 할 줄 아는 운동이 거의 없고, 운동이 충분히 즐거운 것이며, 자기 몸에 맞는 종류를 찾아 평생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많은 여성들은 운동을 체력이나 건강 관리 대신 수많은 다이어트법 중 하나로 생각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른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줄넘기, 훌라후프, 덤벨 등 저비용 방법은 물론이고 ‘끊어놓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다니겠지’란 얄팍한 계산으로 시작한 수영, 요가, 헬스 등도 무엇 하나 3개월 이상 지속한 적이 없다. 점심 먹고 배드민턴을 치려는 시도마저 흐지부지되자 실낱같던 의지도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운전을 시작해 출퇴근길의 알량한 걷기마저 하지 않게 되었다.


‘운동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퇴근길에 운동을 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만사 귀찮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외에도 운동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생긴다. 봄에는 황사, 여름에는 더위와 장마, 겨울에는 추위에 미세먼지까지 사계절 내내 지속되는 이상기후도 좋은 핑계거리다. 


하지만 여성은 상대적으로 골다공증이나 근육량 부족의 위험이 높은 만큼 억지로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잔 근육이 많으면 기초 대사량이 높아서 쉽게 군살이 침범하지 않고, 근육량에 따라 중년이 되어도 살이 찌는 정도가 전혀 다르다고 하니 ‘나잇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운동은 필수인 셈이다. 해마다 연말연초가 되면 “이제 운동 좀 해야 하는데…”를 반복하는 나 같은 ‘운동맹’들을 위한 좋은 해법, 어디 없을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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