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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전자 등 대형 가전업체들이 미국발 ‘블랙 프라이데이’ 역풍을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 최대 쇼핑시즌이 개막되는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해외직구족’(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직접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품목이 TV 등 대형 가전제품으로 확대되면서, 이들 제품의 국내 판매가격에 ‘폭리’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를 통해 삼성전자 TV를 해외에서 구입하면 국내보다 최대 100만원가량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국내 소비자가 봉이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시장 규모와 유통구조의 차이” 때문이라며 애써 국내 소비자 차별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유통업체가 가격결정을 하는 시스템이라 해도, 지금 같은 가격 차는 과도하다.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알기 때문에 국내에서만 이런 비싼 가격으로 팔아치우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걷히지 않는 이유다.


삼성전자 TV 구입하는' 블랙프라이데이 '쇼핑객(출처 :경향DB)


한데 블랙 프라이데이가 아니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비싼 가격이 논란이 되어왔다. 국내가 적게는 8%, 많게는 25%가량 미국보다 비싸다는 사실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격차를 ‘국내에만 있는 우수한 서비스와 방문수리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사실일까? 얼마 전 이런 의구심과 불만에 근거를 보태는 연구 보고서가 발표됐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삼성전자의 부당한 AS이익구조, 소비자와 노동조합이 함께 바꾸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연 1조7000억원을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이 금액 중 삼성전자와 직접적인 도급관계에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에 지불되는 금액은 6000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영업이익’으로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불어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무상수리 기간이 끝난 제품 수리에 별도로 수리비를 받는다. 지난해만 4000억원이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가 벌어들인 매출이 1조원 이상. 삼성전자서비스 사측은 이 중 3300억원만 108개 협력업체, 169개 센터에 돌려보냈다.


삼성전자는 애프터서비스(AS) 이중 도급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로 AS 업무 전체를 위탁했고, 삼성전자서비스는 다시 90% 이상의 수리 업무를 100여개의 도급업체에 위탁했다. AS요금을 삼성전자가 받아 위장도급 형태로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AS를 총괄하는 삼성전자서비스는 서비스 노동 특성과 노동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도급단가를 책정해 저임금을 구조화했다. 수수료 지급방식도 일반적 임금체계에 맞지 않는 방식을 택해 도급업체가 마음대로 엔지니어 임금을 떼어먹을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비슷한 업무에 종사하면서도 도급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은 원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임금 책정방식도 일급이나 시급이 아닌 ‘분’급 방식으로 설계해 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비용을 모두 노동자가 부담케 하고 있다. 제품군마다 표준수리시간(S/T)을 임의로 설정해 여기에 분당 225원이라는 임률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분급조차도 제대로 된 산출과정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동부 사업체노동력통계를 이용한 것인데 샘플 수가 50여개에 불과하다. 통계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보다 훨씬 조사범위가 큰 통계청 경제총조사를 기준으로 하면 분당 281원이 나오는 것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임금 계산, 폭리, 열악한 노동조건이 구조화되고, 30대 젊은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과로로 죽고 노동조합 탄압으로 죽어가기까지 왜 아무런 제재가 취해지지 않았던 것일까?


삼성전자 앞 농성(출처: 경향DB)


무소불위의 권력 삼성공화국을 제어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삼성 자본을 제어하고 바꾸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 노력을 다했지만 자본의 바벨탑은 무너질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이런 바벨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조합’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들은 ‘삼성을 바꾸고 자신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기에 삼성전자의 R급 부품 A급 둔갑, 소비자에 대한 폭리, 살인적 노동조건이 사회에 드러난 것이다. 


이제 소비자들이 삼성 노동자와 함께 이런 잘못된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나서야 하지 않을까? 오는 10일 출범하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에 시선이 끌린다.


홍명교 |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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