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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1909년 차가운 연해주에서 동지들과 함께 무명지 첫 마디를 자르고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고 쓰며 투쟁을 맹세했다. 지금 남아 있는 유묵에 찍힌 손바닥 도장이 바로 이 ‘단지혈맹’의 기개를 그대로 보여주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그런데 왜 무명지였을까? 무명지를 자르거나 피를 내서 위독한 부모님의 입에 흘려 넣음으로써 생명을 연장시켰다는 이야기는 예로부터 효자열전에 자주 나오는 대목이다. 참으로 훌륭한 효심이긴 하지만, 이 역시 왜 무명지였을까?

무명지가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마음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엄지는 거벽(巨擘)이라는 표현처럼 첫째로 추대되고, 검지는 식지(食指), 두지(頭指)로, 중지는 장지(長指), 장지(將指)로, 새끼손가락도 소지(小指), 계지(季指) 등으로 불린 데 비해, 무명지(無名指)는 ‘이름도 없는 손가락’이다. 마디 하나 없어도 생활에 별로 어려움이 없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치부돼온 것이다.

맹자의 무명지 비유 역시 그 쓸모없음에 착안한 표현이다. 무명지가 굽어서 펴지지 않는 경우, 그로 인한 고통이나 해로움이 없더라도 그것을 고쳐줄 사람이 있다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처럼 손가락 하나가 남과 다르게 된 것은 부끄러워하면서 타고난 마음이 남과 다르게 변해버린 것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세태를 비판하는 맥락이다. 억양의 수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소중한 마음에 비해 가장 하찮은 존재로 든 것이 무명지이다.

송대 학자 정이는 이 구절을 외물과 심신의 대비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심신을 위해 필요한 외물인 음식, 의복, 주거 등을 남과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렇게 외물에 힘쓰느라 자신의 심신은 돌보지 않는 바람에, 정작 그 외물을 누리려 할 때쯤이면 이미 심신이 그 외물을 누릴 수 없을 만큼 안 좋은 상태가 되고 만다. 외적 여건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은 물론 몸 전체, 쓸모없어 보이는 무명지까지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그 좋은 여건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외물도 가장 하찮은 무명지보다 못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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