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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은 소란했다. 강은 곳곳에서 파헤쳐졌고,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내쫓겼다. 남쪽 바닷가 도시에서는 크레인에 오른 이가 몇 달째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싸우고 있었다. ‘철회’를 외치는 이들의 싸움은 절박했기에 쉬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강이든 철거하는 데는 이골이 난 이들은 철회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잃을 게 많았다.

그해 곳곳에서 벌어진 싸움은 더는 잃을 게 없는 이들과 잃을 게 많은 이들의 싸움이었다. 그러니 당장 내쫓긴 처지가 아니더라도 길에 함께 나서야 했다. 언젠가는 잃을 게 많은 이들이 나를, 내 가족을, 내 친구를, 내 이웃을 벼랑 끝으로 내몰 테니까.

그 여름, 어린이책 작가들이 길에 나서 겨우 한 일은 해고노동자 가족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거였다. 책 한 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무용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거라도 해야 우리가 함께 서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들은 모아온 책에 책을 받을 아이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적고 간단히 인사말을 썼다. 그때 해고노동자 한 분이 이런 말을 해줬다.

쌍용자동차 최종식 사장이 1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故 김주중씨 등 30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에게 보내는 책은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엄마나 아빠를 잃은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의 말에 작가들은 모두 망연한 얼굴이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도 그가 남긴 가족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작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나 아빠를 따라온 아이의 책에 서명해줄 때 으레 엄마와 함께 읽으라고 적었다는 작가는 자신이 서명한 책들을 다시 들춰봤다. 한 작가는 말했다. 우리가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냐고.

며칠 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전원 복직 기사를 보면서 그해 여름이 떠올랐다. 세상은 해고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준 것으로 끝났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빼앗긴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아빠를, 엄마를, 가족을, 희망을 빼앗겼다. 그들의 깊은 아픔과 절망은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을 철회할 수 없다면, 이제라도 책임은 져야 한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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