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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은 라임오렌지 나무를 친구처럼 여긴 아이, 제제를 만난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라임오렌지라는 게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했지만 알 방도가 없었다. 바나나도 아파서 병원에 입원이나 해야 구경할 수 있었던, 바나나 우유는 목욕탕에 가서 억센 엄마 손에 붙잡혀 온몸이 새빨개지도록 때를 밀린 뒤에야 겨우 얻어먹던 시절이었으니, 라임오렌지 나무는 ‘유니콘’ ‘피닉스’ 같은 상상 속 동물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라임오렌지를 봤을 때 제제의 친구 밍기뉴가 레몬을 닮은 평범한 과일이라는 게 조금 실망스러웠다는 기억이, 그가 초등학교 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고 얘기하는 걸 듣다 보니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독서 토론을 하는데 친구들이 그 책을 가정폭력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저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독서모임 넛지살롱에서 회원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넛지살롱은 고전을 곱씹어 읽고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김영민 기자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단박에 작가의 문제의식을 꿰뚫어 보았을까. 우리는 통찰력 있는 그들을 놀라워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어린 시절 얘기를 했다. 그는 내 딸보다 나이가 적었으므로 우리 둘의 시공간적 간극은 엄청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처음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지 10여분 만에 ‘제제’와 함께 어린 시절로 훌쩍 뛰어넘어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간접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힌다 어쩐다 하지만, 저는 독서의 장점이 감수성을 키워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초등학교 때 장애가 있는 친구를 돕는 아이의 얘기를 그린 동화를 읽은 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 책 덕분에 타인과의 공감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그는 아동용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최근에 차별에 찬성한다는 요즘 20대를 다룬 책을 봤는데, 충격적이었어요.”

나도 그 책을 읽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에 마주 앉아 책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서 아주 오래 앉아 있고 싶었다. 역시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게 독서보다 즐겁다. 책 읽기도, 수다 떨기도 좋은 계절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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