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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을 앞두고 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그건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일반 학교 교실에서 별일 없이 지낼 수 있을까. 똑같은 교실, 똑같은 책상과 의자에 앉아 평범함을 익히도록 강요받는 교실에서 남다른 아이가 겪을 고통을 엄마라고 해서 모두 가늠할 수는 없었다. 엄마도, 아이도 처음 가는 길이라서 그 두려움은 더 컸을 것이다. 그의 말에 출산 전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다는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를 잘 아니, 학교가 더 무섭더라고요. 장애가 있는 우리 딸을 학교가 잘 보듬을 수 있을까, 사실 그럴 여력이 안되거든요. 유치원 다닐 때는 선생님이 적당히 선을 잘 지켜주셔서 좋았어요.”

그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선’이란 관심과 배려를 하되 지나치지 않는 걸 가리켰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이들은 하나같이 선이 ‘善’이나 ‘宣’이 아니라 일정한 기준이나 범위를 가리키는 ‘線’이길 바랐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장애가 있는 친구 돕는 걸 강요하지 않기를, 한 반 친구가 돕는다며 실내화를 꺼내주고 신겨주지 않기를, 예쁘다면서 동생 어르듯 맘대로 볼을 꼬집지 않기를.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나 또한 선을 무시로 넘나들며 살고 있었다. 행동은 말속에 그대로 남아서 나는 때때로 ‘한다’라는 말을 써야 할 곳에 거리낌 없이 ‘해준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해준다는 말에는 말하는 이가 우위에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우리 애가 중2 때 저하고 같이 복도를 지나가는데, 한 여학생이 제 애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후딱 뛰어가더라고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그 또래 애들이라면 다 그렇게 인사하잖아요.”

인사는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 이 사소함을 바라듯이 엄마들은 통합교육 교실에서 아이가 종이접기만 하지 말고 자기 수준에 맞는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교육권을 가진 이 땅의 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사소한 바람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사소한 것을, 선을 지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어야 비로소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아직 모른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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