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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m 굴뚝 위에 그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75m는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숫자였다. 제법 숫자에 밝은 이가 25층 아파트 높이라고 일러줘도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바닥에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지 막연했다. 1층부터 아파트 층수를 헤아리면서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본들 눈으로만 닿을 뿐 마음으로는 읽히지 않는 높이, 그곳에서 93일째 농성 중이라는 두 사람을 응원하러 가면서 시의 구절이 떠올랐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새들처럼 하늘로 올라가 둥지도 틀 줄 알아야 한다는, 송경동 시인의 ‘생태학습’.

그리하여 아주 오래전 어느 날 고무공장 노동자가 을밀대에 날아오른 뒤로 수많은 이들이 한강철교에 크레인에 송전탑에 옥상 광고판에 올랐다. 정말 시인의 말대로 그들은 새들처럼 가뿐히 그곳에 오른 것일까. 어둠 속에서 흰 연기를 거침없이 뿜어내는 까마득하게 높은 굴뚝을 올려다보며 나는 기껏 이런 생각을 했다. 새벽 찬 공기를 뚫고 한 걸음 한 걸음 허공으로 솟은 계단을 밟아 올라가 어느 순간 정말 하늘을 높이 나는 새처럼 작은 점이 되었을, 그들의 첫날을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우리의 요구는 고용과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승계하라는 겁니다!”

마이크를 쥔 이는 굴뚝 아래에 쳐놓은 천막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는 말하는 게 서투르다면서 쑥스러워했다. 오랫동안 길 위에서 세상과 맞서 싸운 이들이라면 날 선 눈빛을 하고 있을 법한데, 찾아오는 이들과 눈을 맞추는 그의 눈빛은 온화했다. 사람들이 왔다고 굴뚝 위에서 내내 흔들리던 손전등 빛도 따스했다. 노동악법 철폐와 헬조선 악의 축 해체! 그들의 외침은 억센 구호가 아니라 망망대해 등대의 불빛과 같은 것이구나, 그들의 싸움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두의 꿈이라는 것을 굴뚝 아래서 그 높은 곳을 올려다보고서야 깨닫는다.

그나저나 며칠 전 회삿돈 수십억원을 멋대로 유용해 뇌물로 쓰고도 버젓이 감옥에서 걸어 나온 이를 생각하니 굴뚝에 있는 이들이 내려올 날이 요원할 것만 같아 차갑게 언 손가락이 아렸다. 세상은 언제쯤 굴뚝 위에 있는 저 불빛에 응답할 것인가.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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