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근 한 여성 시인이 지난해 겨울에 발표한 ‘괴물’이라는 시가, 이른바 ‘미투운동’의 일환으로 알려지면서 문단과 문화계를 넘어 문학 대중이나 일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일부 문학인들이 목도한 현실로, 그리고 많은 문학인들 사이에서는 풍문으로 회자되었던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그동안 순수와 고고(孤高)로 포장되었던 ‘어떤’ 문학(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비판이 일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덮어두었던 또 하나 적폐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우리의 대학이 한국의 문단과 많이 닮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작품 ‘괴물’이 에둘러 가리키는 어떤 인물처럼, 한국의 대학은 온갖 미명(美名)을 두르고 있고 수치로만 본다면 충분히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 있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기이하고 추악한 일들이 적잖다.

지난 2016년 문예지에 문단 내 성폭력 실태를 폭로했던 김현 시인이 7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 시인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단 성폭력을 말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대학의 풍경들, 이를테면 수천억원의 기금을 적립해두고 있으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정리하는 모습 등은 납득할 수 없지만 감추어진 실체는 아니다. 지원금 앞에 교육부의 철저한 을로 전락한 대학 당국, 그 대학본부가 비용의 논리를 들어 촘촘하게 배치한 대학 내의 위계적인 인적 관계들, 계량화된 업적 평가와 연구재단의 연구비에 온전히 포획된 연구자들로 꾸려지는 대학, 게다가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85%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학들에서 벌어지는 감추어진, 그러나 내부자들에게는 공공연한 그 괴이한 천태만상들은 문재인 정부가 수행해가고 있는 적폐청산의 과정과 그 너머 어디쯤 건설될 건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한다.

‘교육 개혁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문단의 패악과 달리 대학의 문제는 대다수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청소년들을 짓누르는 끔찍한 입시제도, 다수의 국민들에게 열패감을 안겨주는 부동산 문제, 젊은이들을 절망하게 하는 일자리 문제,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 몰락하는 지역의 문제 등등 대한민국 사회의 난마 같은 문제들이 대학과 관련되어 있다.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을 제대로 풀지 않고는 사회적 병폐들을 치유할 수 없으며 우리의 건강한 미래도 건설될 수 없다. 대학의 문제를 좀 더 거시적이고 공적인 차원에서 함께 고민하고 다루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 공공성의 중요함을 분명히 인지하고 대학체제 개편을 통한 교육정상화를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고등교육개편안 핵심은 국공립대학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영형 사립대학’을 집중 육성함으로써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확대함으로써 중등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을 지역균형발전의 견인차로 삼겠다는 발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고, 지역적으로 필요한 사립대’ 최소 30곳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분권의 실질적인 방안이 바로 이 고등교육개편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인 교육제도에 대한 발본적인 변화와 개혁 의지를 담고 있는 만큼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단기간에 거둘 수는 없겠지만, 고통의 감내나 장기적 비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 없이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는 당도하지 못할 것이다.

대학은 과거의 지식이 전수되고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는 곳이다. 대학에서 우리는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배우고 도래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과 더불어 대학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할 가치들을 고민하고 교육하는 시민교육의 장이다. 청소년기에서 성년기로 이행해가는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를 두루 성찰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만들어가야 할 곳이 대학이다.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일은 적폐청산 이후의 한국 사회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작업과 뗄 수 없다. 대학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건설하는 핵심 기지로서 우리 사회의 공적인 자산이다. 그러한 점에서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절대치를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공영화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대학의 공적 기능을 회복하는 일,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준비하고 실현해가기 위한 필수조건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문주 | 영남대 교수·국문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