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벼농사를 짓던 그의 아버지는 누에가 돈이 된다는 말에 뽕나무밭을 빌리고, 앞마당에 창고를 지었다. 한창때는 뽕잎 따는 일꾼만 여럿을 두고 창고만으로는 자리가 부족해 방마다 윗목에 뽕잎을 깐 널빤지를 들여놓았다. 언니와 한방을 쓰던 그의 방에도 누에들이 있었다. 누에들은 낮이고 밤이고 쉼 없이 필사적으로 뽕잎을 갉아 먹었다. 그는 지금도 머리맡에서 사각거리던 소리가 생생하다고 했다.

“누에들이 굼질대는 건 아무리 봐도 징그러웠어요. 그래도 그게 우리 집 돈줄이니 어쩌겠어요.”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뽕나무밭으로 달려가야 했다. 온 가족이 매달려 열심히 뽕잎을 따고 누에들은 성실하게 고치를 만들어냈지만, 중국산 실크가 수입되면서 양잠은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집도 이웃집들과 마찬가지로 양잠을 그만뒀다. 집안 형편은 더 어려워졌고,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버스회수권 한 장 아끼려고 학교를 걸어 다녔다.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을 걸어야 했어요. 걸으면서 내내 영어단어장을 봤어요. 옛날에 시골 애들이 제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어요.”

그는 공부를 꽤 잘했고, 상경해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다.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 공부도 마쳤다. 결혼해 아이를 키우면서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일을 시작했다. 그도 누에처럼 단단한 고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쉼 없이 달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삶이 누에와 닮았구나,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천만에요. 누에의 최종 목표는 비상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은 평생 집 한 채 지키려고 아등바등하잖아요.”

그는 아파트값 올리려고 아파트 주민들이 조를 짜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돌며 집을 보러 다닌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조금만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내놓으면 허위 매물이라고 신고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는 누에보다 못하구나. 그러면서 그는 누에처럼 사람도 누구든지 열심히 하면 단단한 고치 하나쯤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게 그리되면 사람도 비로소 비상하는 꿈을 꿀 수 있으려나.

<김해원 | 동화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