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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우연히 만난 그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라고 인사를 건넬 뻔했다. 그 사람은 나를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다.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속속들이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 집은 얼마나 큰지 결혼은 했는지 한때 어떤 병을 앓았는지까지 미주알고주알 파악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그 사람의 남편이나 부인을 본 적 있고, 장인 장모에 시아버지 시어머니까지 낯설지 않고, 그 사람의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지켜봤고 자연스레 첫째 아이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고 둘째 아이의 성격도 알고 있다. 그 사람의 입맛도, 즐겨 입는 옷은 어느 회사제품인지도, 어느 디자이너의 신발을 신는지까지도 알고 있으니 잘 아는 사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와 그 사람의 관계는 그 어떤 지독한 짝사랑보다 더 일방향이다. 미디어를 통해 매일 소식을 접했기에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 사람을 우리는 셀러브리티, 즉 ‘셀럽’이라 부른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가수이든 배우이든 교수이든 작가이든 스포츠인이든 요리사이든 아나운서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유명하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전문분야가 모호함에도 방송인이라는 타이틀로 ‘셀럽’의 자리를 거머쥐는 재주있는 사람도 있다. 재능과 특기가 아니라 명성이 그들을 ‘셀럽’으로 만들어준다. 우리의 삶은 ‘셀럽’의 삶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우리는 플로베르가 묘사했던 보바리 부인의 일상처럼 그저 그렇게 산다. “이제 나날들은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수도 없이, 이렇게 열을 지어 지나갈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생활은 아무리 평범해도 적어도 어떤 사건이 일어날 기회는 있다. 때로는 우연한 일이 실마리가 되어 무한한 변화가 일어나고 주변의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바리 부인처럼 우리에겐 좀처럼 대단한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은 어제 같으며,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우리의 일상과 ‘셀럽’의 일상은 다르다. 우리에겐 평생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짜릿한 일이 그들에겐 천연덕스럽게 매일 일어난다. 포털 사이트의 이른바 실시간 검색 순위는 이들에 의해 채워진다. 어떤 ‘셀럽’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음을 고백했고, 어떤 ‘셀럽’은 공항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였고, 어떤 ‘셀럽’은 SNS에 구설에 오를 말을 남겼고, 어떤 ‘셀럽’은 교제사실을 밝혔는데, 어떤 ‘셀럽’은 이혼했다고 한다.

대체 그 사람이 왜 유명해졌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모두는 그 사람이 유명하다는 사실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직업이라는 단 한 가지 호구지책 수단으로 힘겹게 돈을 벌고 있다면, ‘셀럽’은 명성을 이용하여 삶 자체가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가수로 명성을 얻은 ‘셀럽’은 그 명성으로 배우가 되어 흥행 대박을 터트리고, 가수로서의 명성에 배우로서의 명성을 더한 ‘셀럽’은 작품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CF를 싹쓸이하고, 영상미디어에 싫증이 나면 인쇄미디어로 발을 옮겨 저자가 되어 첫 저작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고 내친김에 책방주인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셀럽’은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한다. 예전의 스타가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했다면, ‘셀럽’은 언제나 우리의 일상을 맴돌면서 우리가 먹을 음식을 결정하고, 다음 휴가의 여행지도 결정해준다. 어떤 책을 읽을지도 그들이 결정한다. ‘셀럽’이 읽은 책의 판매지수는 그 다음날 급상승한다. 그들은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를 대신 결정해준다. ‘셀럽’이 곱창을 먹으면, 그 다음날 곱창이 동이 나는 세상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로 승승장구하는 ‘셀럽’의 숫자가 늘어나고 ‘셀럽’의 일거수일투족이 세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셀럽’이 되고 싶은 욕망 자체가 평범해진다. 누구나 ‘셀럽’이 되는 꿈을 꾸고, SNS는 모든 사람에게 ‘셀럽’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SNS에서 ‘마이크로 셀럽’이 되는데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이 성공사례에 고무되어 너도나도 ‘마이크로 셀럽’이 되겠다고 나서지만 명성 얻기 외줄타기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자칫 ‘관종’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셀럽’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이 복잡한 세상에서 그들은 의도치 않았던 기능을 발휘한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이러한 소로의 질문이 유독 크게 들린다면, 그게 다 오로지 ‘셀럽’ 덕택이다. ‘셀럽’ 덕택에 인생의 선택은 단순해졌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된다. 그들을 따라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삶을 살 것인가, 혹은 자기결정성이 높은 삶을 살 것인가. 그들은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단순하게 만들어주었다. 둘 중 하나만 고르면 된다. 이 또한 모두 ‘셀럽’ 덕택이다.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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