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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부 작은 도시 뒷골목에 ‘사무라이’라는 초밥집이 있다. 무사라면 모름지기 잘 벼른 칼 한 자루쯤 있기 마련, 그 칼로 회를 잘 뜨겠다는 다부진 의지를 보이는 것이려니, 그래서 문 앞에 험악한 일본 무사 그림 하나쯤 걸려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1990년대 말 한국 가요계를 휩쓴 가수가 익살스럽게 웃는 사진이 손님을 맞는다. 그러니까 미국 골목에 무사를 세워놓은 이는 한국 사람이다. 20여년 전 미국 지사에 파견 나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는 이는 젊은 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 사진을 가게 곳곳에 붙여놓았다. 가게 안은 다국적 문화가 공존했다. 한쪽에서는 초밥이 만들어지고, 벽에는 한국 가수 사진과 미국 영화 포스터 따위가 걸려 있고, 스피커에서는 비틀스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일하는 사람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솜씨 좋게 초밥과 롤을 만들어 내는 이는 한국 사람이다. 중학교 때 미국에 왔다는 그는 초밥 만든 경력만 20년이 된다. 그를 돕는 이는 일본 사람이다. 영어가 서툰 그는 묵묵히 손만 놀린다. 식당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이는 멕시코 사람이다. 본래 그 일을 하던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부인이 임신해서 일하기 힘들어지자 그가 대신 자리를 메웠다. 식당 안에서 음식을 나르는 사람은 대개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온 지 13년 되었다는 이는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하면서 주말에만 이곳으로 출근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 청년은 얼마 전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했다. 혼자 뭐든 해보고 싶어 부모로부터 독립한 그는 일주일 내내 식당에서 일한다.

제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들이 서로 마음을 맞춰 일하는 모습이 미국 땅에서는 낯선 게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단일민족을 주창하면서 여전히 이방인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라에서 온 내 눈에는 신기하게 비쳤다. 생각해 보면 삶에서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큰 차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이 세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한 수단이 다를 뿐, 어쨌든 산다는 것은 똑같은 것. 나는 지구인들이 만들어낸 초밥을 먹으면서 우리 모두 똑같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생각한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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