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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을 달리다 몇 년 전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 버스 안에는 승객이 몇 되지 않아 들고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목소리 낮춰 통화하는 소리가 슬쩍슬쩍 들리기도 했다. 버스는 빈 정류장을 여러 번 지나치다 한 아파트 단지 앞 정류장에 정차했다. 버스에 오른 이들은 아이 둘과 어른 하나였다. 엄마로 보이는 이는 아이 둘을 먼저 앉히고 그들 뒷자리에 앉았다. 평범한 외출처럼 보였는데, 곧 전화를 받은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택시가 안 잡혀서 버스를 탔다는, 지하에서 공사하던 중에 불이 났다는, 무슨 기계가 터졌다는, 많이 다쳤다고 하는데 모르겠다는. 그 다급한 통화 뒤에 여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남매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 괜찮을 거야. 진짜 괜찮을 거야.”

아이들은 엄마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셋은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바라봤다. 어린아이들은 괜찮을 거라는 엄마 말을 믿느라, 엄마는 스스로 한 말을 믿느라 곧추세운 등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버스가 번화가로 나오자마자 곧장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나는 그들을 눈으로 좇으며 나도 모르게 하늘을 힐긋 올려다보면서 빌었다. ‘그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하소서.’

그런데 이것이 초월적 존재에게 빌어야 할 일인가. 아침에 일터로 나간 이들이 별일 없이 무사히 퇴근해서 돌아오는 것을 초월적 존재에게 맡겨야 하는가. 예전에 버스 운전석 앞에 간혹 걸려 있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을 집마다 내걸어야 하는 판인가.

버스 안에서 만난 그 가족의 불행을 불운 때문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하루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3명이나 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일터로 나간 가족의 사고 소식을 듣고 황망하게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행여 방정맞은 일이 될까 봐 눈물을 꾹 참으면서, 괜찮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묵묵히 일하다 세상을 떠난, 결코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청년의 1주기를 보내면서 사회가 여전히 아무것도 안 하니 나는 부질없이 버스 창밖을 내다보며 또 빈다. 부디 오늘은 모두 무사히 돌아오게 하소서.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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