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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고 미세먼지에 잠식당한 희뿌연 도시를 떠나면서, 남쪽에 닿으면 쨍하고 갈라질 것 같은 한겨울 쪽빛 하늘과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이미 남쪽 해안 도시까지 밀고 들어와 하늘도 바다도 점유했다. 음울하게 가라앉은 도시 끄트머리에 있는 항구도 출렁이는 바닷물도 무채색이었다. 미세먼지 아래서 우리는 공평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산다는 것을, 깔깔한 목구멍으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초미세먼지 경보가 내리건 말건 학교의 아이들은 활기찼다. 방학을 앞두고 학교는 일주일 내내 행사 중이라고 했다.

“옛날 같으면 방학 전에 애들한테 온종일 비디오만 틀어줬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참 좋아졌지요.”

인근 대도시로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선생님은 나를 쉰 명쯤 되는 애들 앞에 세워놓고는 바쁘게 교실을 떠났다. 아이들은 밝고 기운이 넘쳤다. 중학생들이 으레 하는 엉뚱한 질문을 호기롭게 했고, 때때로 저희끼리 흥이 나서 떠들었다. 그날 우리가 함께 나눈 이야기는 공감과 경쟁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치열한 입시 경쟁을 얘기하면서 요즘 장안의 화제인 입시 경쟁 드라마에 비친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거론했다. 아이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크게 공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애들의 부모님 대다수가 근처에 있는 공단에서 일하시는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집안 형편이 다 어렵지요. 그러다 보니 애들 학원 챙기기도 쉽지 않아요. 사실 아이들한테 무관심한 부모가 더 많아요.”

강연을 끝내고 나와서 만난 선생님은 여전히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 신음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수천만원의 학습 코디네이터를 운운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보면서 지레 겁먹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 미세먼지가 쉽사리 걷히지 않는 남쪽 도시를 떠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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