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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만 해도 시름시름 앓는 어린 자식을 손도 못 써보고 잃었다는 얘기를 흔히 들었다. 그러니 열 자식을 낳은 집도 하나 둘은 그리 허망하게 잃어버렸다고,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는 손자를 자전거 뒤에 얹은 바구니에 뉘어서 십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려 병원에 갔다던 내 할아버지도 끝내 손자를 살리지 못하셨다고 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불빛 하나 없는 논둑을 간절하게 내달렸던 그날 밤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눈시울은 늘 붉어져 있었다. 그러니 자식은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게 효도라며 할머니는 손주들 열 살 생일 때까지 팥단자를 만들어 주셨다. 빨간 팥이 액운을 쫓아 나쁘고 더러운 것들이 달라붙지 못하게 한다며 떡을 싫어하는 손녀 입에도 그 팥단자를 억지로 넣어주셨다.

이런 기억이 떠오른 것은 한밤중에 현관 벨을 누른 낯선 이 때문이었다. 명절 연휴에 택배가 올 리도 없어 머뭇대다가 나가보니 윗집에서 왔다는 남자가 불쑥 백설기가 든 봉지를 내밀었다.

“아이가 백일이라서 떡을 좀 했어요. 드셔보세요.”

엉겁결에 떡 봉지를 받아 들고 보니 난감했다. 불현듯 오래전 어머니들은 백일 떡을 받으면 그 접시에 흰 실타래를 얹어 돌려보내던 일이 떠올랐지만, 나는 답례할 게 따로 없어 궁색한 인사만 하고 이웃을 빈손으로 보냈다.

백설기를 본 가족들은 저마다 백일상 얘기를 했다. 우리 때는 백일상에 꼭 실타래를 놓았다고, 백일 떡은 많은 사람들이 먹어야 좋은 거라고 해서 지나가던 사람에게도 나눠주던 거라고, 그러고 보니 요즘은 백일상 차리는 집이 거의 없더라는. 그래서 백일 떡을 받는 건 참 귀한 일이 되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조금씩 뜯어먹은 백일 떡은 참 달았다.

그 떡을 먹으면서 백일까지 무럭무럭 잘 자랐을 윗집 아이에게 감사하며, 백일 동안 무탈하게 자란 수많은 아이들에게도 고마워했다. 그리고 신생아가 줄어들어 걱정인 지금, 백일을 맞은 아이들에게 동네 사람들이 흰쌀을 곱게 빻아 정성 들여 찐 백설기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런 건 하지 않더라도 모든 아이들을 태어난 것만으로 감사해하며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라가 되길 바라본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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