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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받았던 이국종 교수. 대한민국 의료체계에서 찬밥 대우를 받는 외과,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분과 중 하나인 외상외과 전문의로 활약하며 아덴만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부터 지난해에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북한 귀순병사까지 살려냈다.

이국종 교수가 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대한민국 필수의료 현장의 민낯을 보았다. 밤을 꼬박 새우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의료진, 이들의 소신치료에도 불구하고 연간 쌓여가는 적자, 환자를 살릴수록 손해를 보는 기형적 구조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단지 이국종 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목숨을 다루는 필수의료 행위들의 수가가 터무니없게 낮게 책정되어 있어, 생명 최전선에서 활약해야 할 전국 대학병원의 외과, 흉부외과 및 응급실은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감수하며 근근이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수술결과 및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7.11.15 연합뉴스

적자를 기록하는 병원 경영진은 충분한 의료인력을 보충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숙련된 의료진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인한 혹독한 노동강도를 이기지 못해 다른 부서로 떠나게 된다. 그 자리는 경험 없는 신규 의료진으로 채워지면서 의료의 질은 점차 저하되어, 환자의 안전마저 위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 사례로 유명 사립대학병원 응급실은, 밤 11시 이후에는 일주일에 3일은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고 있다. 의료진 내부에서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응급의학과 전문의 인력 충원을 몇 차례나 요청했지만 병원 경영진은 그들의 주장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유명한 병원 이름만 보고, 늦은 밤 다급하게 그곳을 찾는 환자들 중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정부가 필수의료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한 결과, 의료인들은 점점 필수의료에 해당되는 외과, 흉부외과, 중환자실 근무를 기피하였고, 해당 분야 지원율은 땅에 떨어졌다. 심지어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조차, 올해 단 한 명의 외과 지원자도 받지 못했다. 설령 힘들게 외과, 흉부외과 수련과정을 마쳐도 저수가로 인한 병원의 최소한의 투자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 정작 전공과 관계없는 진료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2017년 12월16일 이대목동병원에서는 4명의 환아가 3~4시간 사이에 연달아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조사과정에서 힘든 근무환경을 견디다 못해 4명의 전공의가 근무지를 이탈하고 남은 근무자들이 과도한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신생아 사망 당시 근무하고 있던 주치의 전공의는 일주일 전 운전석이 반파되는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병가를 사용하지도 못하고 인력난을 호소하는 병원의 요청에 따라 근무에 복귀한 상황이었다. 이대목동병원은 감염관리에 대한 책임을 절대 회피할 수 없고, 보험 과잉청구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의혹 또한 조사 후 문제점이 밝혀진다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근본적인 시스템의 오류를 양산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4명의 신생아 사망의 쟁점은 비용 절감을 위해 관행처럼 이루어진 분할조제이다. 이전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분할조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의사들의 민원에 “분할조제에 대해 일부 용량을 사용하고 일률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하다”고 답한 바 있다. 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기관에 분할조제를 강제하고 있다는 의료계의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을 찾는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질 낮은 의료 서비스를 값싸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지불하더라도 안전한 진료환경에서 최선의 진료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와 같이 필수의료 분야에 충분한 재정적 지원 없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를 고집한다면, 의료인을 옥죄는 규제를 강화한다면, 궁극적인 의료의 질 저하는 피할 수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보건당국이 하루빨리 현명한 선택을 하길 기대해 보지만, 대한민국 의료현장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기동훈 |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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