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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잎이 난분분히 날리는 봄날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생각한다.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 아래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은 아이들. 그 사진에서 나는 만난 적도 없는 두 아이를 알은체하며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내가 그들을 몰랐을 때 그들은 그곳에 있었으나, 내가 그들을 알았을 때 그들은 그곳에 없었다. 영원히 그들을 몰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아이가 키운 고양이 이름은 다윤이다. 아이는 다윤이를 동생으로 여겼다. 다윤이는 내내 언니 책상 한 귀퉁이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아마도 그 자리는 오래전부터 다윤이의 자리였을 것이다. 다윤이는 내가 아이의 초등학교 때 일기를 훑어보는 걸 우두커니 내려다봤다. ‘아빠가 부대찌개를 해주셨다. 너무 맛있어 많이 먹었다. 체했다.’ 아이가 2학년 때 쓴 이날 일기의 제목은 부대찌개다. 편지 쓰기를 좋아한 아이가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도 읽었다. 나는 아이가 동그라미 분식집에 다녔고, 펭귄 인형을 베고 잤고, 노래를 잘 불렀고, 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 아이를 만날 수는 없다.

교실 맨 끝자리에 앉던 키 큰 아이는 연극반이었다. 연습할 때는 실수를 많이 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서는 천연덕스럽게 엄마 연기를 잘했다. 친구들은 그 아이가 아주 엉뚱하다고 말했다. 어린 사촌 동생이 여름방학 때 놀러와 심심해하자 베란다에 물을 채워 물놀이를 하게 하질 않나, 한겨울 쓰레받기를 들고 나와 눈싸움을 하질 않나, 친구 소원을 들어줄 요량으로 아이돌 팬 픽션 2편을 완성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블로그에 연재 중이던 작품은 2014년 4월5일에 제21화가 올라왔다. 작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엄청난 사건을 벌이고는 끝을 맺지 못했다.

재작년 여름 내내 약전을 쓰려고 두 아이 흔적을 찾아다녔다. 아이들의 친구들을 만났고, 다른 곳으로 전근 간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두 아이를 알아간다는 건 기쁨이 아니었다. 그날 그 배가 아무 일도 없이 제주도에 닿았다면, 그리고 아이들이 유채꽃 만발한 섬을 구경하고 금요일에 돌아왔다면. 나는 낯선 도시에 살고 있는 그 아이들의 삶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리 알게 되어서 정말 미안했다. 이 봄 또다시 나는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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