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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아는 이를 만났다. 그는 양손에 묵직한 가방을 들고 어깨에도 큼지막한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가방에는 그가 겨우내 깎고 벼리고 달구며 담금질한 작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야심 차게 만든 새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지하철 의자 위에 가방을 펼쳤다. 까만 벨벳 상자에 고이 들어있는 장신구들을 꺼내는 그의 가녀린 손을 보고 있자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걸 하나하나 만들어 상자에 넣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은을 깎아 만든 팔찌를 내 손목에 채워주면서 눈치를 살폈다.

“자꾸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너무 꾸물거렸어요. 그래서 몇 달 동안 새 디자인만 궁리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예술가는 누구나 어제보다 오늘이 낫길, 오늘보다 내일이 더 찬란하길 바란다. 바란다는 것은 쉬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열심히 하면 내일은 나아질까? 그게 아니라는 걸 2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을 그는 팔찌를 들여다보는 나를 초조하게 쳐다봤다.

그의 간절한 눈빛 때문이 아니라 정말 팔찌는 아름다웠다. 그는 내 칭찬을 듣고는 의자 앞에 아예 쪼그리고 앉아 새 디자인의 장신구를 죄다 꺼내 보여줬다. 그는 마치 제 필통을 열어 보여주는 어린아이처럼 신바람이 났다.

나는 반지 하나가 쏙 마음에 들어 가격을 물었는데, 그는 멋쩍은 얼굴로 도리질을 했다. 그는 토요일마다 열리는 청년 마켓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으면서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게 가장 난감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회사 의자에 앉아 자기 자신의 가치가 높게 매겨지기를 몸 달아할 때보다 자신이 만든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가치를 그대로 평가받는 지금이 더 좋다고. 서른이 넘어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 주위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자기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그의 말을 들으면서 영화 대사 하나가 떠올랐다.

“손에 쥐어진 만년필을 보고 생각했죠. 왜 이걸 쥐고 있지? 왜 되고 싶지 않은 것을 되려 하지?”

자신의 작품을 들고 세상으로 나서야 하는 그는 정말 손에 쥐고 싶은 것을 쥔 것일까? 어쨌거나 토요일마다 날씨가 화창하길…….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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