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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전원장치(UPS) ⓒ 이영준

우리는 전기가 당연히 항상 공급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다. 적어도 2011년의 9·15 정전 이후로는 그랬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기가 자동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 아니라, 설사 전기가 끊어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비상전원시스템 덕분이다. 데이터센터, 병원, 방송국 등 중요시설에는 전력이 끊어졌을 때를 대비한 비상전원장치(uninterruptible power supply)가 설치돼 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컴퓨터로 중요한 작업을 할 때 전력이 끊기면 안되기에 소형의 비상전원장치를 쓰는 경우도 많다.

비상전원장치에는 디젤 발전기를 이용하는 타입, 배터리를 이용하는 타입, 플라이휠을 이용하는 타입 등 다양한 타입들이 있다. 

언젠가 잠실야구장에 설치돼 있는 플라이휠 UPS를 볼 기회가 있었다. 야구장도 위의 시설들처럼 정전이 되면 안되는 곳인데, 투수가 공을 던진 순간 조명이 나가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의 야구장에서 정전이 돼버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잠실야구장도 철저한 정전대비가 돼 있다.

플라이휠 UPS는 겉으로 보면 검은색의 큰 통일 뿐이지만 이 속에는 플라이휠이 1분당 2만~5만회의 속도로 항상 돌고 있다. 플라이휠은 무겁기 때문에 돌면서 많은 관성력을 발휘하고, 그 덕에 전원이 끊겨도 한동안 회전한다. 플라이휠에는 발전기가 연결돼 있어 그 관성력이 발전기를 돌리게 된다. 플라이휠의 회전수가 빠르기 때문에 매우 큰 원심력이 작용해 파손될 염려가 있으므로 회전체는 특수한 강철로 제작돼 있고 그것을 싸고 있는 케이싱도 특수하게 제작돼 있다. 단순히 시커먼 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끊긴 전원을 연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천분의 1초 이하이므로 관중들은 정전을 감지할 수 없다.

디젤발전기는 설비가 복잡하고 매연이 발생하며, 배터리는 많은 양의 납을 저장해야 하기에 환경에 안 좋은 반면 플라이휠 UPS는 그런 문제가 없다. 그 덕에 잠실야구장은 2013년 이후 정전이 한 번도 없었다. 비상전원장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전력생활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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