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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우리는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특히 엘리트 관료와 지배정당이 주도하는 폐쇄적 정책결정 패턴에 대한 불신, 장기침체와 각자도생을 반영하는 공동체의 균열, 세대와 지역 간 대립구도 격화 등과 같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대안으로 ‘굿거버넌스’를 창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협의의 이상론으로서 거버넌스는 대내외 환경변화에 부응하는 정부-시장-시민사회의 협력적 통치(협치)를 의미한다. 하지만 광의의 현실론으로서 거버넌스란 특정한 분야의 문제해결을 촉진하거나 저해하는 제도나 관행을 총칭한다. 따라서 좋은 혹은 나쁜 거버넌스는 국가별 발전성과의 차이와 직결된 문제이다. 이때 총체적 국가경쟁력을 구성하는 3대 요소인 국부, 국질, 국격의 거버넌스 방식은 각기 역동적과 정태적, 포용적과 배제적, 이타적과 이기적 등으로 대비가 가능하다.

굿거버넌스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오래되고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세계를 호령한 대제국의 흥망은 물론 지금 우리가 직면한 국정의 난맥상에서 굿거버넌스를 동경해 왔다. 정병석이 출간한 책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에 따르면 세종과 같이 현명한 군주가 통치하던 조선 전기는 르네상스의 시기로 평가되지만 조선 후기에는 착취적 신분제도, 폐쇄적 관료제도, 변질된 조세제도 등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정부는 확실한 안보와 안전을 전제한 상태에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하고 복잡한 관료제는 안정적·반복적 업무수행을 위해 세밀하고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관리된다. 따라서 공공부문의 관료제 조직은 민간의 역동적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고, 경직적이며, 답답하고, 소모적이라 변화하기 어려운 존재로 간주된다.

반면에 시민들이 원하는 정부는 유엔이 굿거버넌스의 요건으로 제시한 것처럼 통합적이고, 합의적이며, 책임지고, 투명하고, 반응적이고, 효과적이며 효율적이고, 공평하면서 포괄적이며, 법의 지배를 따라야 한다. 부패는 최소화되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책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나아가 사회와 경제의 복잡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나 관행은 한번 형성되기는 어렵지만 일단 안정화되면 오래 지속하면서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거나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로 의존 현상을 유발한다. 따라서 조직이나 개인이 미래를 선도하는 주역으로 부상하거나 비교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유지된 경로를 창조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참고로 간소한 절차와 지속적 소통을 추구한 ‘패스트웍스(FastWorks)’를 앞세워 디지털 시대라는 척박한 생존환경에 적응한 GE나 앞으로 넘지 않고 뒤로 넘는 ‘배면뛰기’를 시도해 높이뛰기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포스베리가 대표적 혁신 사례이다.

기업이나 개인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환경변화에 취약한 작은 나라들도 혁신적 변화를 중시해 왔다. 이스라엘,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은 신생 벤처의 생존방식을 벤치마킹해 국가경쟁력을 제고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강소국 사례는 효율지상주의를 표방하는 국부의 증진 사례라는 점에서 편향적이다. 따라서 균형발전의 견지에서 복지국가를 선도한 북유럽이나 국제적 연대를 중시한 중남미 국가들의 굿거버넌스 사례를 학습하는 일에도 유의해야 한다.

김정렬 | 대구대 교수·도시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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