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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몇 년 전 서울역 지하서점에서 마주친 글귀다. 나중에 알아보니,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채 출판계에 널리 알려진 경구였다. 진리에 가까운 메시지여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써먹는다. 저 문장에서 책은 괄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책을 노래나 그림, 춤, 밥으로 바꿔도 얼마든지 의미가 생겨난다. 책 대신 길을 넣어보자. 사람이 만든 길보다 길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나는 길을 만든 사람을 안다. 여기서 길은 메타포가 아니다. 말 그대로 길이다. 사람이 두 발로 걷는 길. 집과 마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사람의 길. 자동차를 위한, 속도와 편리를 위한 도로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길, 오래된 길이다. 오래돼서 새로운 길. 나는 제주올레를 ‘오래된 새 길’이라고 부른다. 오래된 새 길을 만든 사람이 한때 내 직장 선배였던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다.

서 선배가 기자 생활을 때려치우고 고향 제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선배가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했을 때도 한쪽 귀로 흘렸다. 그런데 10년 전, 선배가 제주의 옛길을 복원해 도보여행 코스를 선보인다는 뉴스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걷기를 경멸하시던 분이었는데. 2001년 5월 내가 수경 스님을 따라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를 취재할 때, ‘뉴스 밸류가 부족하다’시던 분이 올레를 만들다니.

그것은 일대 전환이었다. 선배가 귀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환이 분명할 터인데, 고향 제주에서 옛길을 복원하다니. 그것은 현대문명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반문명 선언’이었다. 속도 지상주의, 성장 제일주의의 면전에다 곧추 세운 깃발이었다. 그 깃발에는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었다. ‘나’로 돌아갑시다, 천천히 갑시다, 자연과 함께 갑시다…. 그리고 10년. 그사이 두어 차례 올레를 걸었지만 한나절을 넘겨본 적은 없다. 그사이 올레에 관한 이야기는 몇몇 지인들,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접해왔다.

며칠 전 제주올레 사무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1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와 산문을 공모했는데 심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선뜻 그러마고 응낙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길이 만든 사람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서명숙 선배가 길을 왜 만들었는지, 또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왔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이 어떤 화학적 변화를 일으켰는지 그 육성이 듣고 싶었다.

너무 고요해서 자기 발자국 소리에 놀랐다는 문장이 있었다. 어린 아들과 함께 매년 걷기 축제에 참가하는 젊은 엄마는 매번 자기 아들을 기억해주는 아저씨가 너무 고맙다고 했다. 남편을 잃고 혼자 걷는 중년 여성은 길 위에서 애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남편 49재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자주 찾았던 제주 곳곳을 다시 걷는 것이었다. 뇌졸중에 걸려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마침내 혼자 제주올레를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딸의 애틋한 시선도 있었다. 임용고시에 실패하고 혼자 제주를 찾은 청년의 현학적 넋두리도 있었다. 며칠 걸으러 왔다가 아예 눌러앉은 이들도 많았다.

제주 토박이의 글도 눈에 들어왔다. 산티아고를 완주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올레를 걸으면서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반성이 진솔했다. 40년 미국 이민생활을 접고 제주에 정착해 통번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어르신은 ‘함께 걷기가 최고의 소통’이라고 말한다. 다른 글에서도 비슷한 경험담이 나온다.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함께 걷는 게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혼자 올레 전 코스를 완주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여성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 같은 변화를 ‘도시여자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곁들여 다음과 같이 썼다. ‘길이 길을 알려준다.’

길 위에서 스스로 거듭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축복이었다. 그렇다. 사람이 만든 길보다 길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길 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여러 겹이다. 우선 자기 자신과 만난다. 길 위에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는 타인과의 만남으로 확대된다. 헤어질 뻔했던 연인이 다시 결합하고, 가족 사이의 벽이 허물어진다. 풀 한 포기, 바람 한 줄기, 햇볕 한 줌이 다시 보인다. 땅끝과 바다의 시작이, 별똥별의 맨 앞이 다 다시 보인다. 잠들어 있던, 아니 빼앗겼던 감수성을 길이 되살려 준다. 다시 살아난 감수성이 인간을 넘어 지구와 우주를 다시 만나게 한다.

제주올레 10년. 그사이 전국에 500개가 넘는 걷기 코스가 생겨났다. 일본 규슈에 이어 몽골에도 올레가 계획되고 있다고 한다. 마침 서울 한복판에도 ‘하늘 길’이 열렸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시민을 위한 산책로로 거듭났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걸으러 가는 것도 좋지만, 도시에서도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저만치 달려 나가는 마음부터 붙잡아야 한다. 마음을 세워놓고 도시를 다시 봐야 한다. 행복도시에 대한 명쾌한 규정이 있다. 걷기 좋은 도시가 행복한 도시다. 걷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안전하고 아름다운 살 만한 도시다. 나라와 사회, 그리고 문명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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