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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와 일본변호사연합회(이하 일변연)는 2010년부터 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제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교류해 왔고, 매년 양국을 오가며 간담회를 개최해 왔다. 지난해에는 대법원의 2018년 강제징용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일변연 내부 사정으로 간담회가 열리지 못했고, 2년 만인 2020년 2월10일 도쿄 일본변호사회관에서 간담회가 진행됐다. 일본 변호사 중에는 30년 이상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온 백발의 변호사는 물론 최근 일본 내 ‘혐오발언’을 계기로 양국의 과거사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젊은 변호사들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일본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제 피해자들의 일본국,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불과 20여년 전까지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가진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것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해 왔다. 예컨대 참의원 회의록에 기재된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이 1991년 8월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발언이나 외무성 조약국 법규과장이 1994년 ‘외무성 조사 월보(月報)’에서 한 설명 등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한국 정부나 대법원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입장을 번복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이번 간담회에서는 2015년 한·일 외교장관의 이른바 ‘위안부 합의’에 대한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도 소개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헌재에 위 합의의 위헌을 확인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 헌재는 2019년 12월27일 위 합의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위 합의문 내 아베 내각총리대신의 사죄에 대해 피해의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관한 국가책임이 적시되지 않은 반면, 위 합의 후에도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법적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양국이 진정한 사죄를 바탕으로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사죄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해결방향을 제시한 데 큰 의미가 있다는 설명에, 일본 변호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현재 일본에 아베 총리 및 집권 자민당을 견제할 만한 뚜렷한 정치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아베 정부를 상대로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위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 소송대리인단 및 지원단체들은 공동으로 지난 1월6일 강제징용 문제 해결구상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첫째 피해자 중심주의 입장에서의 해결, 둘째 진정한 해결을 위해 가해자의 사실 인정 및 사죄, 사죄의 증거로 배상, 사실과 교훈의 다음 세대 계승, 셋째 해결구상 검토를 위한 한·일 협의체 창설 등이다. 

그리고 이번 간담회에서는 일부 변호사의 제안에 따라 공동 해결구상의 후속방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방안은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의 구체적 해결방안 마련을 위한 민간협의체를 신설하고, 이 협의체를 정치, 경제, 법조, 언론, 학계에서 각 1명씩 양측 합계 10명 정도로 구성하되, 협의체의 실무를 맡을 사무국을 만들어 양국 변호사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생존 피해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특히 우리 사회가 지혜를 모을 때이다.

<박동민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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