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열일곱 명의 국회의원님들께. 감사했습니다. 급히 부탁드렸음에도 22명의 ‘총선넷 피고인’에 대한 탄원서에 이름을 올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미처 인사를 드리기도 전인 지난주 금요일(12월1일)에 이들 모두에게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판결 결과는 인터넷을 통해 빨리 알려졌지만, 한 개 사건으로 22명이나 재판받았던 것에 비하면 세간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총선넷’을 검색하면 바로 보실 수 있는데, 이들은 2016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낙선 대상 후보로 뽑은 후보자들의 사무실 앞을 순회하면서 ‘우리는 당신을 찍지 않는다’ ‘당신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기자회견 행사들을 개최했거나 그중 한두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이 중 몇몇은 벌금 200만~300만원, 나머지 이들은 벌금 50만~8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 못지않게 유감스러운 게 있습니다. 이들이 대체 무슨 법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인지를 소개하는 뉴스를 별로 못 보았습니다. 이 사건에 관심 있는 이들도, 검사와 판사를 비판하기는 해도 그들이 무슨 법조항을 근거로 삼았는지를 두고 토론하는 이들은 별로 못 봤습니다.

탄원서에 기꺼이 이름을 올려주셨던 의원님들 앞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검사와 판사로 하여금 이들을 기소하고 유죄를 선고할 수 있게 한 공직선거법 91조, 93조, 103조가 있었고, 이를 그대로 두면 앞으로도 같은 ‘범죄자’들이 나올 것임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좋은 법률을 만들고 나쁜 법조항은 개정할 권한, 국민이 맡긴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의 시선은 재판 결과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기소와 판결의 출발점이었던 91조, 93조, 103조로 의원님들과 세상의 시선이 이어져야 합니다.

검사와 판사는 피고인들이 마이크를 사용하여 기자회견한 것이 범죄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말을 마이크, 그러니까 ‘확성장치’를 사용해서 말해서는 안된다는 선거법 91조를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기자회견하면서 현수막과 피켓을 사용한 것도 범죄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내용, 특히 후보자 이름 같은 게 들어간 현수막과 피켓 사용을 금지한 93조를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행사 명칭은 기자회견이었지만, 본질은 집회였기 때문에 범죄라고 검사와 판사는 말했습니다.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집회를 모두 금지한 103조를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금지한 선거법 조항들이 이 사건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특정 후보자나 정당한테서 사주받은 게 아니라면, 시민과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게 옳은 일입니까?

시민들의 삶은 선거 결과로부터 4년(국회의원), 5년(대통령) 동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습니다. 아니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결정이 미치는 영향은 4년, 5년을 훌쩍 넘습니다.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거나, 이게 나라다운 나라지 하는 생각으로 뉴스를 볼 만큼 선거 결과는 시민들에게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이런 시민들이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핵심적인 권리로 대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은 이 핵심적인 주권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의원님들, 그리고 동료 시민 여러분. ‘총선넷 피고인 22명’의 처지에 관심을 가져주셨던 그 마음을, 선거법 개정으로 이어가주십시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가 선거법을 고치도록 힘써주길 부탁합니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