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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세계 최초로 외국의 원조를 받던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국제개발협력의 롤 모델 국가다. 해외 원조를 의무적으로 이행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중 인프라 지원·봉사단 파견 규모까지 최상위다. 나 또한 그 일환으로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협력사업(KOPIA)에 소속돼 ‘농업’ 공적개발원조(ODA) 업무를 담당 중이다. 11개월간 국내 면적의 10배 이상 되는 남미 볼리비아 전역을 누비며 알게 된 사실은 이곳 남미 최빈국이감자, 토마토, 퀴노아 같은 세계 주요 식량자원의 원산지라는 점이다. 

그러나 유전자원의 보고(寶庫)인 볼리비아는 전례 없는 환경위기를 맞고 있다. 현지 337개 지자체의 67%가 지난 11년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9.2%(고원지대)는 서리와 강설 피해를 입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르기 쉬운 6000m급 안데스 설산은 1980~2009년 사이에 빙하의 37.4%가 녹아 수자원도 잃고 지역 수입원인 스키장도 폐쇄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림·축산 분야 피해는 전체 사회·경제 섹터의 62%(약 2700억원)라 한다. 이 같은 기후변화 심화는 재래 유전자원 손실로 이어진다. 특히 자원을 채집하고 이를 중장기 보존할 시설이 미비한 볼리비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그들의 농업 ODA 사업제안서에 기후변화·생물다양성 문구가 예외 없이 등장하는 이유다.

한국 또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동해의 해수온도가 상승하여 한류성 어류인 명태 등이 사라진 지 10년. 대구 특산물인 사과는 강원도에서 재배되고, 망고 등 동남아 열대작물은 충청지역까지 북상하는 등 한반도 식생 판도가 뒤집히고 있다. 그래도 한국은 노르웨이에 이어 ‘제2의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세계 중복 종자보존소 설비를 갖췄기에 유전자원 멸종위기에 대응하는 게 가능하다. 실제 정부는 보존 중인 종자를 기후변화에 적응 가능한 신품종으로 개발하여 기후변화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노력 중이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KOPIA 10주년을 맞아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총 22개 국 농업기관장(차관급)을 초빙해 지난 한 주간 워크숍을 진행했다. 볼리비아 농업산림혁신청장도 참석해 한·볼리비아 농업 ODA사업 성과와 발전방향을 공유했다. 마침 정부도 작년 제4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19~2023년)을 통해 생물다양성 ODA 사업 비율을 기존 1.12%에서 4.10%로 올렸다. 해외자원부국 생물자원 정보화 지원을 통해 우수 유전자원을 교류·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정책이다.OECD 회원국인 한국과 개도국 볼리비아의 지속 가능한 윈윈 전략이 이번 10주년 워크숍을 통해 마련된 것이다.

<김주영 | 농진청 코피아볼리비아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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