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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대학의 위기가 전 방위적으로 가속화되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의 양적 팽창이 남긴 후유증은 결국 ‘대학의 종말’이라 할 만한 단계로까지 진행되어 버렸다. 국내 대학들이 국공립, 사립, 수도권, 지방 할 것 없이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 등록금은 동결되었고 인구절벽으로 2021년부터 대학 입학자원 역시 25%가 모자란다는 현실도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한계 대학들은 당장 다음 달 교직원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암담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학의 기초학문인 교양교육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실용 학문에 가려 정체성마저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대학들은 학술성이나 보편성이 없는 교과목들, 일회성 프로그램, 심지어 정부 각 부서가 요구하는 혼전순결교육, 통일교육 등이 교양교육과정을 잠식해 왔다. 학생들 역시 교양과목은 쉽게 학점을 따는 수업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에서 교양이란 용어가 “착하게 살자”는 식의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교육부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지 뒤늦게나마 처방전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훼손된 교양교육의 재정립 카드로 교양기초교육의 정상화를 꺼내 들었다. 대학의 각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교육당국의 의지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고등교육을 제자리로 돌리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말 발표된 교육당국의 제3주기 대학기본역량 진단 편람은 교양교육과정의 정의를 명료하게 설정하고 특히 기초학문 능력 제고를 위한 교양교육 체계와 운영여부를 진단요소로 채택하였다. 비록 이 내용들이 최종본은 아니지만 편람에 수록된 것만으로도 현장 대학에서는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양교육은 고등교육에서 전공과 양대 축으로 성장해 왔다. 원래부터 대학의 학부교육은 교양교육과 기초학문교육, 즉 교양기초교육으로 구성되었다. 교양기초교육은 대학교육 전반에 요구되는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폭넓은 이해, 즉 전통적인 자유학예(liberal arts)를 바탕으로 올바른 세계관과 건전한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글쓰기와 양적 추론을 비롯한 리터러시 능력 연마를 필수로 하고, 인문·사회·자연·예술에 기반을 둔 기초학문 교과목 배분이수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영역의 교과목들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다. 2016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제정한 ‘대학 교양기초교육의 표준 모델’ 역시 이러한 배경을 가진다.

지금까지 대학에서는 실용과 전공과목 등에 밀려 교양교육은 늘 뒷전으로 밀려난 채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교양교육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뒤늦게나마 교육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건 다행이다.

이런 점에서 교양교육 관련 학회, 기관들의 책임과 역할도 어느 해보다 무거워졌다. 올해부터는 교양교육이 제 모습을 되찾아 고등교육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상아탑 풍경을 그려 본다.

<박일우 | 한국교양교육학회장·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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