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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선거연령 하향 소식을 듣고,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가며 참정권 운동을 해온 청소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삭발을 하고 집회를 하고 성명서를 내며 싸워온 청소년들을 몇 년 동안 인터뷰하며 그 절박함을 가까이서 느꼈던 터다.

한 청소년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좋긴 한데, 걱정이에요.” 기사를 보고 뛸 듯이 기뻐 반 친구들에게 말을 꺼냈더니 “아, 그러냐” 하고 남의 일인 듯 시큰둥하더란다. 21대 총선 얘기에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벌써 끝났냐”고 되물어 당황했다고. 총선이 누굴 뽑는 선거인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건 “수능 준비하기도 바쁜데 또 무슨 필수과목 넣는 거 아냐?” 하는 냉소였단다.

이 얘기가 그리 놀랍지 않았던 건 그간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소수의 청소년 너머에 있는, 다수의 무관심한 청소년들에 대해 익히 들어와서다. 2016년 촛불집회 당시,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을 보고 사람들은 ‘민주시민이 탄생했다’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광장의 중심에 있던 그들을 인터뷰해보니, 교실에는 이 어마어마한 일에도 별 관심 없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사회 이슈를 꺼내면 “공부하기도 바쁜데 언제 뉴스 보냐”고 한단다. 그들은 진작부터 이런 다수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시민임을 자각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현실적인 시민교육을 해야 한다고 피력해왔다. 

진보교육감 3기를 지나며 민주시민교육이 강조되었지만 양적 팽창만큼 질적으로 성장하진 못했다. 여전히 교육현장에선 시민교육을 사회과 영역으로 여기는 데다, 방법을 몰라 헤매는 곳도 많다. 교육과정으로 시민을 기른다는 발상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사실은 모든 교과가 인성교육이며 시민교육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들레’에 기고한 고등학생은 ‘교문 밖에서 스스로 민주시민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주말과 방과후 시간을 쪼개 다양한 동아리와 단체 활동을 하며 세상에 눈을 떴다고. 학교 안의 학생자치, 시민교육은 생기부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반가운 소식이지만, 선거연령 하향 이후 해결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 셈이냐”라는 보수진영의 비난에 나는 “그렇다”고 답하겠다. 인간은 정치적인 존재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한, 우리 삶에 한순간도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학교는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삶의 변화를 꾀하며, 자신과 이웃의 안녕을 살피는 시민을 기르는 정치판이 되어야 한다.

다수의 청소년들이 정치에서 멀어진 건 그들이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왜곡되고 차단된 정보 속에, 경험이 없어서다. 세뱃돈을 모으고 중고장터에 물건을 내다 팔아 단체 활동비를 마련하는 청소년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물었다. “내 문제니까요. 평생 헬조선에서 살긴 싫거든요.” 53만명에 이르는 만 18세 유권자의 선거교육은 정치를 ‘나의 문제’로 여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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