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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국정을 논하는 이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예측 즉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서, 국민도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국책사업으로 향후 몇백조원의 세금을 퍼부어야 할 거대하고 위험한 사업을 일부 이해관계자들만의 논의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원자력클러스터’라는 이름으로, 경북지역에 원자력 관련 시설을 집중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사상 최대의 대규모 사업으로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나, 사고 시는 원전보다 훨씬 막대한 피해로 국가의 존망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경북도는 이런 위험시설들을 단순히 대규모 공공사업 즉 종래의 토목공사의 연장선 시각에서 강행하려 한다. 원자력클러스터의 핵심시설은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과 우라늄 등을 추출할 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공장과, 재처리 후의 플루토늄을 핵연료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이다. 재처리 공장의 상용화 및 사용후 핵연료의 전량 재처리만으로도 최소 300조원 이상의 예산투입이 예상된다. 그러나 재처리 공장이 있는 프랑스 및 일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제성, 안전성, 핵확산방지의 어느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국내의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재처리방식은 30여년 전에 미국 국립연구소(ANL)가 개발한 것이나, 미국 역시 여전히 실험실 수준의 상태이다. 국내 개발도 실험실 내에서 하루에 겨우 20㎏을 실험하고 있는 뿐이다. 게다가 공정의 핵심부분인 정련공정의 개발은 답보상태이며 사용하고 있는 실험물질도 실제의 사용후 핵연료가 아니라 ‘모의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원전사고피해 모의실험 결과발표 ㅣ 출처:경향DB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대규모 시설의 건설을 획책하는 것은 한마디로 과학을 빙자한 ‘사기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재처리 공장과 일란성쌍둥이의 역할인 소듐냉각고속로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고속로의 연구가 시작된 지 벌써 6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끊임없는 사고발생 때문에 세계 어디서도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한 채 결국 미국·영국·독일 등의 선진국들도 원형로 수준에서 개발을 포기했다. 현재 일본의 원형로 ‘몬주’도 완공 후 17년 이상 정지되어 있는 상황으로, 강력히 추진을 주장해 왔던 일본정부조차 폐지를 거론할 정도다. 오는 8월에 그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소듐냉각고속로는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만큼 일반 경수로보다 제어가 어렵고, 사고 시의 방사능피해도 경수로보다 훨씬 크다. 최악의 경우에는 핵폭발까지 일어날 수 있다.
정부와 추진파들은 재처리를 통해 사용후 핵연료의 94~96%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현실적으로는 겨우 1% 이하의 재활용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책사업이며, 왜 하려는지에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국내 원전에서 1만3000여t의 사용후 핵연료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서 원전 내의 수조 등에 보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고리원전은 2016년경에 수조의 저장 여유가 없어질 긴박한 상황이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할 최종처분장은 불가결하다.
한편 직접 처분 시에는 방사능의 독성감소에 최소한 10만년이 걸린다. 이런 막대한 양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무책임하게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는 만행을 자행해도 되는 것인가?
2009년에 만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또는 직접 처분에 대한 대국민공론화위원회도 첫 회의 개최일에 갑작스레 중지된 후 공식적인 움직임이 전혀 없다. 정부는 원자력클러스터의 추진을 말하기 이전에, 사용후 핵연료 처리 또는 처분에 대한 대국민 공론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경북도에도 공공사업의 양보다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개발정책을 우선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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