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의사협회와 일부 의학계가 반대에 나서고 있다. 공공의대의 경우 없던 의대 정원을 만들어 설립한 것이 아니라 대학 비리와 질 낮은 교육 문제로 폐교된 서남의대의 정원만을 이어받아서 만드는 것이라 의료계의 반대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계층,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생명과 건강에 관한 필수보건의료를 평등하게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응급, 외상, 심뇌혈관질환 등으로 인한 예방 가능한 사망에 있어서 지역 간 편차가 너무 크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는 것이 축복이어야 하는데 많은 지역은 분만할 병원이 없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어린이 재활병원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 발생 등 국가 위기 상황을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할 훈련된 역학조사관이나 공중보건 전문가는 매우 부족하다. 수도권은 병원도 의사도 넘쳐나는데,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 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의대 졸업생이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지역의 필수보건의료를 책임지고 헌신할 공공보건의료 전문가 양성을 위해 공공의대는 꼭 추진되어야 한다. 학생 선발부터 지역에서 헌신할 인재를 뽑아야 한다. 기존 의과대학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는 공공보건의료 교과과정을 공공의대에서 교육해야 한다. 졸업 후 의무복무를 거쳐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공중보건의사 제도나 공중보건 장학의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존의 의과대학 교육이 공공보건의료 전문가의 양성에 관한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이 부실할 뿐 아니라 실제 기존의 의과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의 실효성이 매우 미미하다는 증거가 이미 드러난 상태다. 그런데 또다시 그러한 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반대를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지역의 필수보건의료를 책임질 수 있는 공공보건의료 전문가를 직접 교육하고 육성하는 정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문제를 풀어나갈 동력이 생길 수 있다.

의료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와 의대 설치에 막대한 국고가 들어갈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기우에 불과하다. 국립중앙의료원을 필두로 충분히 교육실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공병원이 있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은 공공의대가 설립되는 시점에 많은 국가 재정을 투입하여 현대화된 병원으로 이전할 계획인데, 이보다 더 좋은 교육실습 공간은 없을 것이다. 공공의대의 비용 대부분도 임상교수 확보에 들어가기 때문에 국립중앙의료원이 교육병원이 될 경우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가 배제되었다는 주장 역시 일방적이다. 이미 공공의대 설립 필요성은 전 정부에서 추진되어왔던 사안이고 수차례 학술 연구와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여러 의견이 반영되어왔으며, 현 야당 역시 유사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한 바 있다. 가장 핵심적인 이해당사자인 전북 지역의 여론도 공공의대 설립에 찬성하고 있다.

공공의대가 지역의 필수보건의료에 헌신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명실상부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임준 |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