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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후배의 군에 간 아들이 탈영을 했다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 소동은 하루 뒤 부대에서 좀 떨어진 PC방에서 인터넷에 골몰하고 있는 친구 아들을 발견함으로써 다행히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닌 걸로 끝이 났다. 참 그 녀석 특이하군 하는데 후배의 말이 요즈음 군대에선 그렇게 부대를 이탈한 병사가 PC방 같은 데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골몰하다가 붙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참 시대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가 군부대 안에서 생활하며 주로 느낀 것은 그것이 육체적인 원인에서 오든 정신적인 원인에서 오든 몸으로 느끼는 배고픔이었다. 그래서 외박이나 휴가 나갈 땐 늘 빵과 과자, 짜장면, 불고기 등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봐야지 단단히 벼르며 부대 정문을 나서곤 했다. 지금 젊은 세대에겐 문화적 결핍이 우리 세대의 배고픔과 같은 모양이다. 하기는 먹고사는 문제가 기초적으로는 해결이 되고 지적 네트워크가 삶의 핵심적 필수요소가 된 인지자본주의 시대가 아닌가?

젊은 세대에게 문화적 결핍이 우리 세대의 굶주림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면 학교교육은 우리 세대보다 젊은 세대에게 더 근본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우리 세대에게 일정 수준의 학교교육과 그를 통해 습득한 기초학습능력이란 못 갖춰도 살아가는 데 결정적 지장은 없는 것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겐 굶주림이 우리 세대에게 그러했듯이 정상적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장애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교육은 과연 이러한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변화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양적으로만 본다면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고 대다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고, 매년 엄청난 숫자의 박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우리의 학교교육은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외양을 갖추고 있는 듯싶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분별하게 양적 팽창에만 몰두하던 산업화 시대의 교육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 있지 않다.

우선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의 학교교육이 문맹에 가까운 학생도 등록금을 내고 출석만 잘 하면 무난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참 신기한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생들의 기초학습능력에 대해 국가 수준에서 한 번도 평가하는 일이 없고, 9년간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가 학생들의 기초학습능력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최소한 10년간의 국민 공통교육과정이 끝나는 고1 말에 국민 공통교육과정에 대한 국가 수준의 졸업자격 고사라도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통과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고2, 3에서 별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졸업자격 고사 응시 기회를 1~2회 더 주어 최대한 기초학습능력을 갖추도록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국가가 자기 할 일을 확실히 하면 대입제도를 둘러싼 혼란과 갈등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고1 말의 졸업자격 고사를 대학입학자격 고사를 겸하도록 하여 ‘수능 1’로 하고, 고3 말에 고2, 3의 진로선택 교육과정에 대해 ‘수능 2’를 보도록 하고, ‘수능 2’는 미래 역량을 물을 수 있는 서술형, 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되 학생이 응시할 수도 있고 응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형으로 하면, 대학 학생 선발을 대학 본고사를 금지하는 선에서 대학 자율에 맡겨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5~6년 전 혼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신문에 심리상담사 자격증 시험 광고가 나왔기에 흥미가 생겨 시험을 보았다. 시험 교재를 사서 한 달간 공부해 보았는데 2급 심리상담사와 아동심리상담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는 통보가 왔다. 나는 이건 1차 시험이고 이제 교육도 받고 장기간 실습도 한 후 테스트를 해서 자격증을 주겠거니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우편으로 자격증 두 장이 배달되어 왔다. 허망하게도 그것이 끝이었다. 사기당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국가가 이렇게 자격증에 대한 질 관리를 안 하면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당연히 상담자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학벌을 따질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심리상담사 자격증보다는 유수한 대학의 졸업장에 대한 신뢰도가 훨씬 높을 테니까. 국가의 각종 자격증에 대한 질 관리의 허술함이 우리 사회가 실력 위주의 사회로 나가지 못하고 학벌사회에 머물게 되는 한 이유가 아닌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이것은 직업계고와 관련된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정말 고졸자 취업을 늘리고 싶다면 그 자격증들이 현장에서의 실력 발휘를 담보할 수 있도록 질을 관리하고 직업계고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고 이른바 일류 대학이라고 교육의 질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일류 대학의 국학 전공 대학원에서 교수가 되려면 미국 유학을 해서 박사학위를 받아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박사학위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대학교육의 질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웅변한다.

흔히 미래사회에 대비한 융합적이고 창조적인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어떤 새롭고 기발한 정책이나 제도에 의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생겨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개혁이란 것은 그렇게 단절적인 게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가 오랜 반복적 훈련을 통한 숙련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자기만의 창조적 연주를 해내듯이 우선은 기왕의 것에서 질적으로 최선의 것을 만들어내는 매우 지루하고 고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현재 있는 자격증들의 자격부터 물어야 한다.

<김진경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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