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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 교육을 근간으로 한 근대학교의 시효 만료를 알리는 신호가 뜬 지는 한참 되었다. 서구에서는 50년 전, 한국 사회에서는 30여년 전부터 빨간불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일찍 대두된 서구에서는 개혁의 청신호도 일찍 나타나고 있지만, 그 신호체계를 한국 사회에 이식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교육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맞물려 있어 사회 구조가 함께 바뀌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다.
학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개인과 공동체가 다르다. 개인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를 떠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공동체로서는 학교를 버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것과 같다. 타고 가면서 차를 수리하는 수밖에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 포퍼의 피스밀(piecemeal) 전략이 현실적인 접근이다. 한걸음 한걸음 개선해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달리는 차를 수리하는 제도개혁은 고도의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개혁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개혁 대상이 맞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업체들, 부모들, 대학들, 교장들, 교사들….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근거하여 맞대응을 한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는 것도 업자들과 투기 수요자들이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가면서 맞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피스밀 전략이 실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처음에는 반짝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도루묵이 되고 만다.
맞대응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외통수로 몰아야 한다.
부동산의 경우 공급 물량을 늘려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정부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아파트만이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임대아파트도 공급해야 한다. 통제력을 확보한 다음 보유세나 분양가 공개 같은 정책을 보조수단으로 쓰면 아파트 값은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손자병법식의 묘수보다 오자병법식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밀어붙여야 한다. 통제력 확보가 우선이다.
교육 분야도 비슷하다. 강남 3구의 아파트 값이 뛰는 것과 강남 8학군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교육 문제와 부동산 문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기 대책으로는 강북에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학군을 만들고, 동시에 그곳에 아파트를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수시입학제를 확대하면서 사교육 수요가 생겨나지 않는 대입 평가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과 사교육업자들, 학부모들이 담합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지 않도록 정부가 통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장기 대책은 교육의 패러다임,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학력으로 임금을 차별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목수가 되고 싶은 아이는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밟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가 점점 줄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만큼 20대 초반에는 누구나 대학에서 교양을 습득할 수 있게 국가가 학비를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이를 청년에게 주는 기본소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학력 차별을 없애거나 아예 학력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전문 연구를 할 사람만 석박사 과정을 밟게 하면 된다.
초·중·고와 대학은 교양교육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양교육의 핵심은 맥락을 파악하는 힘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부분을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볼 줄 아는 것,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아는 것이 교양이다. 교양 있는 사람은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이유는 우리 사회 전반의 교양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교양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시민교육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곧 공교육의 역할이다.
생각하는 힘,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생각하는 힘, 살아가는 힘의 본질 또한 맥락을 읽고 소통할 줄 아는 데 있다. 일본과 한국의 교육이 그 방향으로 제대로 바뀐다면 내부의 갈등도, 한·일 간의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공교육은 공동체의 시민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공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
<현병호 교육잡지 격월간‘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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