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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더위는 더 일찍 시작되고, 더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더위 관련 질병으로 산업재해가 승인된 노동자 수는 최근 5년간 156명이며 이 중 26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옥외 작업을 하는 건설노동자, 배달·운송 업무에 종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극한 더위를 견디며 일하고 있습니다.

옥외 작업은 아니지만, 대형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도 더위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옥외 작업과 달리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고온 환경 노출에 대해 안전보건 관리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물류센터는 그 규모가 매우 크고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구조인데, 에어컨 등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새벽에도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더위에 높은 육체적 부담이 더해지면 심장·콩팥 등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마감시간에 맞춰 뛰어다니며 일할 정도이며, 식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는 휴식시간이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위 문제를 해결하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대해 회사는 물, 아이스크림 지급을 대책으로 내놓았습니다. 일부 센터에서 에어컨 설치를 약속하였지만, 에어컨이 언제 설치될지 구체적인 설치 시기 등이 명확하지 않으며, 에어컨 설치 전 휴식을 비롯한 대책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중에 쿠팡의 혁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90% 이상이 계약직·일용직입니다. 이 중 70%가 일용직이고, 계약직도 3개월, 9개월, 1년 단위로 계약을 합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 현실에서 그나마 일할 수 있게 해준 쿠팡을 고마워하는 노동자들도 만나봤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달에 20일 이상 야간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가 일용직, 3개월·9개월·12개월 계약직의 기간을 버텨내 무기계약직으로 가고 싶어도 웬만한 몸은 버텨내지 못합니다. 높은 노동강도뿐 아니라, 야간노동도 문제입니다. 새벽배송, 로켓배송 등의 이름으로 물류분야 혁신을 만들어 낸 기업이지만, 혁신의 뒤에는 야간노동을 하는 쿠팡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최고의 혁신 기업이라 자부하는 쿠팡은 우리나라에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었고, 반도체 회사 수준의 시가총액을 갖는 기업이 되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새벽까지 36도의 온도를 버티며 적절한 휴식도 못하고 뛰어다니며 야간노동을 하는 일용직·계약직 노동자들이 탈수증상을 호소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의 공격적인 경영을 닮고자 하는 여러 기업의 움직임이 무섭습니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유례가 없는 최악의 노동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노동조건에 눈감는 우리가 만들려는 미래는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오피니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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