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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 입법 예고가 임박했다. 입법 예고를 앞두고 산업재해와 노동 현장의 안전 문제에 대한 보도가 이전보다 증가하고 있다. 노동 관련 보도의 비보도, 비의제화 관행에 비춰보면 보도량 증가 자체가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노동문제 보도 프레임이 노동자 입장과 사용자 입장으로 양분될 것 같지만, 실제 분석들에 따르면 보수 언론의 노동 의제 누락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즉 노동 인권이나 산업 현장의 안전 문제는 그동안 보수 언론을 통해서는 아예 의제화되지 않았다. 지난 12일 발표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링 보고서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간혹 보도를 하는 경우는 사용자 입장만이 크게 부각된다. ‘공장이 멈추면 손해가 생기고 우리 경제 성장에 해악을 끼친다’는 낡은 프레임이 반복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산업재해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언론의 비보도는 유가족들에게 절망을 안겼다. 산재 사망사고 아카이빙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프로필에는 “일하다가 죽었지만 기사 한 줄 안 나온 노동자들이 훨씬 많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일하다가 죽은 노동자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언론 때문에 유가족들이 스스로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의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에는 언론에 보도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에 상처를 받지 않고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실려 있을 정도이다.

노동과 산업재해 문제의 비보도화로 인한 사회적 비가시화는 우리 노동 현장의 안전과 인권 침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연구자 방희경과 원용진은 2016년 삼성 산업재해 보도 분석에서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인 상황에서 사회 전체가 왜 사용자의 편을 들고 있는지, 왜 노동과 산업재해가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혹은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언론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러한 인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간혹 산업재해 사망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국민적 분노가 일어나지만, 우리 모두가 노동자이고, 서로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기업 중심의 언론 보도는 우리의 시각을 산업 발전과 국가 성장의 틀에 묶어 놓고,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동일한 노동자라는 연결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산업재해 보도가 늘어나도 사건 보도 자체에만 그친다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산업재해를 극적 사건으로만 소비하는 선정적 보도를 넘어서야 한다. 일터의 문제는 복합적이다. 노동자 안전 보호 미비로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기업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가장 큰 문제다. 고용 불안 때문에 안전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노동자들 간의 연대도 어렵다는 불안정한 노동 상황이라는 더 큰 맥락적 문제도 존재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사건 대응을 해야 하는 언론사로서는 맥락과 관점을 설명하는 보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목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선정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들이 우선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날그날 소비되는 보도만이 아니라 검색, 추천, 아카이빙을 통한 의제 재발굴과 재의제화 가능성 역시 높아질 수 있다. 언론이 의제를 장기적으로 구성하고 성장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민 대다수의 삶과 죽음에 관련된 노동의 문제야말로 의제 발굴과 지속적인 의제화가 필요한 영역이다. 최근 몇몇 언론에서 진행 중인 노동 관련 기획 보도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발적인 사건으로서가 아닌, 노동 현장을 담아내고 노동자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를 보여주는 의제 구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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