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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밀양 송전탑 경과지 마을인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61세 김영자입니다. 저는 평생 농사를 지은 농사꾼입니다. 저는 데모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저를 보고 데모꾼이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서명 받는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앞선 사람들이 물러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맨 앞에 서서 싸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반대 주민 150가구는 지난 12년 사이에 두 사람이 목숨을 끊고, 수백명이 경찰서, 검찰청, 법원을 드나들고 철탑도 다 섰지만,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지금도 합의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막는 일입니다.

왜냐고 물으면 저는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한국전력 사장님이 ‘신고리 5·6호기가 없으면 밀양에 765㎸ 송전탑은 필요 없다’고 했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더 이상 핵발전소를 지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약과 달리 공론화로 결정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답답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미 국민들이 선택을 했는데, 또 선택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밀양 주민들은 제일 먼저 7월6일 버스 타고 울산시청까지 가서 ‘탈핵탈송전탑 원정대’를 만들어 3개월 동안 열심히 뛰겠다고, 탈핵 사회로 가는 길에 우리 밀양 할매·할배들이 앞장서겠다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70을 넘긴 노인들이 지난 몇 달간 전국을 다니며 정말 고생했습니다. 저도 행사 때마다 연단 위에서 말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다 알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를 겪고 수백조원을 들여도 수습을 못하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에 전기가 남아도는 사정을 봐도 그렇고, 대한민국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도 아닌데, 지진대 위에 월성 고리 핵발전소들이 늘어서 있고,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10만년이나 보관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이제는 상식이 되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 문제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워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식한 농사꾼이어서 다른 건 잘 모릅니다. 병원에 가니까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이 병에 대한 모든 것을 제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할지, 안 할지는 제가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 이치가 아닙니까.

이번 공론화위원회를 보니 저쪽 보수언론이나 공사 재개를 주장하는 측은 매번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갖고 하는 이야기니 그 말을 믿고 따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이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신고리 5·6호기 문제의 당사자 중 한 사람입니다. 저희들은 신고리 1호기부터 반대해왔습니다. 2012년 6월에는 신고리 5·6호기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러 서생면까지 갔다가 한수원이 고용한 것 같은 청년들과 몸이 부서져라 싸웠습니다.

10월20일 오전 10시에 어떤 결정이 날 것인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쿵쿵 뜁니다. 저희가 12년간 해온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의 승패가 이 일로 결정나는 것만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이낙연 국무총리님,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님, 국회의원님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로 대한민국의 탈핵 시대를 활짝 열어주세요.

밀양 주민들, 12년 싸움에서 비록 철탑은 다 섰지만, 신고리 5·6호기는 막아냈다는 그 자부심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데모꾼이 아니라 농사꾼으로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간곡히 호소합니다.

<김영자 밀양시 상동면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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