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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가 막바지에 들어섰다. 경제성, 안전 문제 등 세계적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논란이 되었던 원전 문제를 불과 1~2개월 만에 참여시민들이 판단하기에는 골치 아팠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 한국은 농업, 경공업, 중화학공업, 정보통신으로 짧은 기간 끊임없이 성장동력의 변화를 추구해왔다. 만약 우리가 특정시대의 주력산업에 연연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인데, 논의에 거품도 많지만 우리 경제에 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변화라는 관점에서 닥쳐올 4차 산업혁명과 원자력이 기술적으로 궁합이 맞느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 주제는 다시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미래전력망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ICT와 원자력 간 관계를 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ICT혁명을 다른 전통산업부문에 확산시키고 디지털경제의 고도화를 통한 고효율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전력기술은 제약, 광학, 바이오 등 다른 기술에 비해 ICT와 상호보완성이 크고, 둘 간의 융복합 기술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원자력과 ICT는 궁합이 맞을까? 안타깝지만 이 둘은 결합하면 할수록 해킹, 사이버테러, 정전 등 사고위험이 늘어나 상극의 관계이다. 이 때문에 원자력계도 ‘피동형 설계’, 즉 정전에 대비해 ICT설비를 최소화시킨 단순화된 설계를 강조한다.

둘째, 미래전력망과 원자력의 관계는 어떨까?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최대전력회사인 피지앤이(PG&E)는 가동 중이던 원전인 디아블로의 애초 20년 수명연장계획을 포기하고 폐쇄를 결정해 국제적인 화제가 되었다. 당시 PG&E는 “원자력은 미래의 역동적인 캘리포니아 전력망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기술검토결과도 발표했다. 과거 세계 전력업계는 원자력이 공급간헐성이 큰 신재생에너지를 보완해줄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원’이라고 여겨왔는데, 그 정반대의 주장인 것이다.

PG&E는 신재생에너지가 절반을 차지하게 될 캘리포니아의 미래 전력망에서는 나머지 절반의 전원이 신재생에너지의 공급변화에 따라 신속한 출력변화가 필요한데 자유로운 출력변화가 안되는 원전은 오히려 ‘아킬레스 힐’이 된다고 검토한 것이다. 특히 태양광이 늘어날수록 낮시간대 전력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 빈번해져 전력망의 균형을 맞추려면 나머지 발전기들은 신속한 출력조절, 기동정지가 가능한 기술들이어야 하고, 에너지저장기술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원자력과 4차 산업혁명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원자력계는 데이터센터가 늘어나 전력수요가 증가하니 원자력도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스마트그리드 등 약진하는 전력-ICT를 외면한 피상적 논리다. 원자력은 전력보급률과 생산성이 정비례해 성장했던 제2차 산업혁명 말기나, 중화학공업이 늦게 성장한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던 기술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가치개념과 기술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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