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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에서 남편이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해 다치게 한, 참담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언론은 그 사실을 보도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결혼이주 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절반에 가까운 387명(42.1%)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 언론은 여성 결혼이민자의 가정폭력 피해율이 국내 여성의 ‘지난 1년간 가정폭력 피해율’ 12.1%(‘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보다 약 3.5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분석했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36)씨가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연 그럴까?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보고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2017)는 “이주민 관련 기관들의 협조를 통한 눈덩이 표집 방법을 활용하여” 표본을 수집했다고 적었다. ‘눈덩이 표집’은 작은 눈뭉치를 굴려 점점 더 큰 눈덩이를 만들어 가듯이, 처음 단계에는 표집 대상이 되는 소수의 응답자들을 찾아내 조사하고, 다음 단계에서는 그 응답자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해 비슷한 속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도록 하여 그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방식으로, 비확률표집의 하나다. 그것도 “이주민 관련 기관들”을 통해 조사했다는 것이다. 마치 교회·사찰 등에서 사람들의 종교를 조사한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와 ‘2013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여성 결혼이민자의 가정폭력 피해 실태를 부가적으로 조사한 바 있다. 이 두 부가조사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이용한 결혼이민자’를 모집단으로 하고, 각각 307명과 301명의 표본을 ‘유의추출’했다. ‘유의표집’은 모집단에 대한 연구자의 사전지식을 바탕으로 표본을 추출하는 것으로, 비확률표집의 일종이다.

‘눈덩이 표집’이든 ‘유의표집’이든 비확률표본은 모집단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응답자의 특성을 기술하는 것만 가능할 뿐, 어떤 형태의 일반화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선 2018년 ‘결혼이주 여성 체류실태’라는 인포그래픽을 배포하면서, 비확률표본이라는 점도 밝히지 않았고, 연구용역 수행기관의 결과물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적시하지 않았다. 이 조사결과는 국내 언론 대다수가 인용했다.

그래서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확률표집을 한 조사결과를 찾아보았다. ‘가정폭력 피해율’은 ‘신체적·정서적·경제적·성적 폭력 중 하나라도 경험한 피해자의 비율’로 정의되는데, ‘비교의 등가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적 폭력’ 피해율만 비교했다.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서 국내 여성의 ‘신체적 폭력’ 피해율은 3.3%였고, ‘중한 신체적 폭력’ 피해자 비율은 0.5%였다. ‘2015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서 ‘지난 1년 동안 배우자와 다툼 이유’ 중 ‘폭언, 욕설, 신체적인 폭력문제’를 꼽은 사람은 여성 결혼이민자의 1.9%였다. 또 ‘2017년 국제결혼중개업 실태조사 연구’에 응답한,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한 지 5년 이내인 여성 결혼이민자가 ‘지난 1년 동안 배우자와 갈등’ 사유로 ‘폭언, 욕설, 신체적인 폭력’을 고른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2.3%였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나타난 ‘신체적 학대’ 유형 중 하나인 ‘폭력 위협’ 피해율은 무려 38.0%였다. 이 조사결과만 유독 튀지 않는가. 두 가지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한 언론에서 머리기사로 뽑았듯이 “이주여성 40%는 맞고 살아요”가 사실이라면 한국 사회는 지옥일 것이다. 혹자는 실제 가정폭력 피해율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활동가들 중 일부가 이런 주장을 편다. 자신의 경험이 보편적이라 판단한 탓이다. 여성 결혼이민자의 신체적 폭력 피해율이 38.0%라면, 별로 드물지 않은 일인데 이번 일처럼 ‘충격적 뉴스거리’가 될 수 있을까? 따라서 이 가설은 확실히 기각할 수 있다.

둘째, 그 조사가 엉터리라면, 조사결과가 ‘피해자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해 다문화가족 구성원들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들’로 여기는 고정관념을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명해야 한다. 언론이 정정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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