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988년 11월1일. ㄱ씨의 최초 장애등록일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88년 11월 장애인등록제가 전면 시행되었고 학교 교사에 의해 등록되었다. 2003년 2월28일. ㄴ씨가 지적장애가 무엇인지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장애인으로 등록한 날이다. 등록증 뒷면엔 보호자 전화번호가 적혔다. 보호자가 필요한 존재.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인식을 파악하게 하는 단서다. 1994년 6월26일. ㄷ씨는 장애인 등록 후 전화요금, 전기료 등 몇 개의 감면 혜택을 받았다. 걷기 어려운 장애가 있었지만 3급이기 때문에 2급까지 이용 가능한 장애인 콜택시를 탈 수 없었다. 등급에 따라 차등화된 서비스에 맞춘 삶, 자신으로 살기보다 제도가 구획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강요받는 것, 장애등급제가 만든 차별의 구조다. 무엇보다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는 차별은 실재하지만, 개인의 몫이었다. ‘의학적 장애인’ 개념을 강조한 장애등급제의 몰젠더성은 장애인 간의 차이를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31년이 지난 2019년 7월1일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었다. 

장애 여성 운동을 함께하는 동료인 이들은 평등할 수 없는 관계가 차별이라고 말한다. 관계란 둘 이상의 사람이 관련을 맺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이란 범주를 정책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질병과 손상에 대한 의학적 기준을 내세웠다. 사회와 장애가 어떤 구조적 관계 맺음 속에서 차별이 발생하는가? 질병과 손상을 가진 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어떠한가? 제도는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누락시켰다. 장애인을 잘 관리하고 보호하겠다는 시혜적 접근이 존재의 존엄함을 앞질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천5백여 명이 1일 오후 서울 서초동에서 집회를 열고 장애인 복지제도의 전면 수정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 마련을 촉구하며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는 충분한 협의 없이 성급하게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했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제도가 개편되면 혜택이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 발표와 다르게 서비스의 질이 더 떨어지고 장애 유형별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장애계는 광화문 농성장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5년간 투쟁했다. 그러나 개편된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의학적 기준에 의한 기능평가 방식이 유지되었다. 가짜 장애인이 세금을 축낸다는 복지서비스 대상자에 대한 불신은 수혜자를 선별하는 기존의 틀을 정당화한다. 부족한 예산은 서비스 대상자를 엄격하게 가려내는 차별의 수단이 된다. 한국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6월 발표한 개편된 장애인 서비스 종합조사표에 의한 모의평가에 따르면 장애인의 생존권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도 삭감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짜라고 분노하며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다시 농성에 돌입한 이유다. 

변경된 제도가 ㄱ, ㄴ, ㄷ씨의 삶의 변화를 가져올까?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자신의 의지로 변화되어야 한다. 변경된 장애인 서비스 종합조사표가 이들의 의지와 욕구를 담아내기에 제한적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장애등급제와 개편된 종합조사표 모두 장애인 내의 차이를 지운다.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차별의 시작이다. 특히 등록제가 가진 몰젠더성은 장애 여성이 겪는 젠더권력 차이를 함몰시킨다. 다수의 장애 여성은 무수한 돌봄노동과 감정노동 등 재생산 노동을 도맡는다. 돌봄 수행자가 젊고, 장애가 없는 건강한 사람일 거란 사회의 믿음은 도전받아야 한다. 젠더, 나이, 장애 유형,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계급, 인종 등 장애인 간의 차이는 욕구와 필요를 드러내는 제도 속에서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