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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명박 정부는 국제유가와 화석연료 가격이 치솟자 “원전 가동을 늘려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고 고유가를 돌파한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국내 유류가격은 국제유가와 연동되어 있는 반면, 전기요금은 치솟는 발전연료 가격과 무관하게 정부가 통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시장을 무시한 이 조치로 인해 국내 전력 수급에 엄청난 혼란이 찾아왔다. 1차 에너지인 등유, LPG 등 난방유와 2차 에너지인 전기의 요금이 열량 대비 같아지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마치 수도요금과 생수가격이 같아진 형국이다.

수도요금과 생수가격이 같아지면 어떻게 될까? 생수로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하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당시 제조업체들은 각종 가열, 건조 공정에 사용되던 유류보일러를 세우고 값싼 전기로 전환하면서 고유가 상황임에도 국내 전력 수요는 오히려 급증했다. 또한 겨울에는 농어촌 지역과 화훼농가 등에서 난방유보다 싼 전기로 난방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여름에만 발생하던 전력 피크 부하가 겨울로 옮겨졌다.

이명박 정부 초기 국내 원전 이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별문제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무리한 원전 가동을 위하여 누적된 설비 균열과 결함을 무시하고 발전소 정비를 미루는 관행이 반복되었다.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과거 발전소 정비를 비성수기인 겨울에 맞추었으나, 여름과 겨울 모두 피크 부하가 발생하면서 정비 시기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11년 여름이 끝나자마자 겨울피크를 대비한 정비를 위해 부리나케 다수의 원전과 화력발전소들을 세우는 과정에 이른바 ‘915정전’이 찾아왔다.

수십년 만에 겪은 정전사태에 이명박 정부는 “전력 수요예측을 잘못했다”며 모든 책임을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떠넘기고 사표까지 수리했지만, 정작 정부의 잘못된 가격통제가 전력 수급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전무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과도하게 억제했던 전기요금의 인상과 민생용 유류에 대한 중과세를 잠정적으로 완화했고, 국제유가도 하락하면서 유류가격과 전기요금의 역전현상은 해소된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하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 달 들어 국내 등유가격과 가정용 전기요금이 열량 기준으로 동일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원자력계와 보수언론들은 “탈원전으로 인해 전기요금이 폭등할 것”이라며 조직적인 선동을 하고 있고, 정부·여당은 “전기요금 인상은 절대 없다”는 논리로 맞서면서 전기요금은 이명박 정부 시절처럼 통제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주로 저소득층, 산업체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난방유류에는 오히려 일본보다도 높은 중과세가 부과되고 있다.

대내외 에너지수급 여건을 무시한 채 협소한 ‘원전 찬반’ 논쟁은 이명박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 전기요금은 원가와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반영해 가격의 수급조절 기능을 복원시켜야 하며 산업용, 난방용 유류에 대한 터무니없이 높은 세금은 낮춰져야 한다. 이제는 전기요금 통제 정책을 부실한 보편복지의 가림막이로 사용하던 과거 정권들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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