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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탈원전 정책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강원 삼척, 경북 영덕 등에 계획된 신규 원전 4기를 백지화하고 경북 경주에 있는 월성 1호기를 폐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원전 수출 타격’ ‘위험한 탈원전 질주’ 등 자극적 표현으로 이번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2030년까지 전체 전력생산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정부의 목표 달성도 어렵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들 주장대로 탈원전은 위험하고, 한국 사회의 탈원전 속도는 너무 빠른 것이며, 원전 수출 타격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위험한 것은 탈원전이 아니라 원전 확대다. 탈원전 속도는 빠른 게 아니라 2080년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로 너무 느리다. 또 재생에너지 전력생산 비중 20% 목표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현재 비중이나 에너지전환 비전에 비춰 보면 소심하기 그지없다. 이미 2016년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재생에너지 전력생산 비중은 20%를 초과했다.

탈원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사용하는 것을 두고 혈세 운운하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중국·러시아 등 대자본을 보유한 국가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쟁에 국가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게 오히려 혈세 낭비 아닐까.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기요금의 3.7%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말 그대로 전력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된 공적자금이다.

이면거래 등을 수반하는 원전 수출의 불투명한 지원에 비하면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탈원전 비용을 감당하는 게 훨씬 더 투명하고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에너지전환의 기반을 조성하기 때문에 취지상으로도 적합하다.

재생에너지 산업 발전에 대한 지원은 원전 수출 촉진에 비해 지역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더 기여한다. 이것은 필자의 주관적인 바람이 아니라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전환의 현장에서 입증되고 있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돈의 문제’에 앞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반한 에너지전환이 절실한 것은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탈원전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10여년 전에 진행됐어야 한다. 2000년대 초 부안에서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반대 운동이 고조됐을 당시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을 살펴보면,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도 “방사성폐기물 처분을 고려하지 않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때 정치인들이 책임 있게 이 문제를 다뤘더라면 사용후핵연료 처분 등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마련될 때까지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모라토리엄(이행 불능)을 선언했을 것이다.

보수 야당 일각이나 원자력 산업계 및 학계는 건설도 시작하지 않은 신규 원전의 건설 계획 백지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니다.

지금은 1978년 원전을 운영한 이래 40년 이상 원전의 ‘임시’ 저장소에 보관돼 있어 곧 포화 시점이 다가오는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마련을 위해 정치·사회·기술적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김수진 고려대 BK21플러스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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