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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발전업계와 산업계, 환경정책 결정자들 사이의 핫이슈는 단연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이다.

2021~2030년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 부담 주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논의의 핵심은 ‘해외배출권’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일부를 해외탄소시장에서 산 배출권으로 충당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연간 1조~2조원. 이 부담을 정부(국민의 세금)와 산업부문, 화력발전 업계 가운데 누가 감당할 것인가에 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문제를 푸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협상에서 한국이 2020년까지 현재 추세 배출전망치(BAU) 30%를 줄이겠다고 세계에 공언할 때만 해도 없었던 ‘해외배출권’이라는 개념이 굳이 도입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보면 된다.

이야기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는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 비의무 국가였는데도 2020년까지의 배출량을 5억4300만t으로 설정, 국제적 찬사를 받았다. 사건은 이명박 전 대통령 퇴임일이자 박근혜 정부 첫날인 2013년 2월25일 벌어졌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건설비 규모가 약 20조원에 달하는 신규 석탄화력 7GW, 가스복합 3.2GW가 포함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6차 전기본)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미칠 영향은 막대했다. 톰슨로이터는 6차 전기본으로 인해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1억t, 다시 말해 20%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2015년 파리협정 협상이 시작됐다. 신기후체제하에서는 선진국, 개도국 할 것 없이 모든 당사국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이므로 한국도 2030년 감축 목표를 제출해야 했다. 6차 전기본대로라면 기존 목표를 준수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2015년 6월11일, 한국은 결국 원래 약속에서 약 1억t 늘어난 6억5000만t 내외의 4개 시나리오 중 하나를 채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로 다음날,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청와대에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이 최대한 야심찬 목표를 제시해달라’는 취지의 주문이었다.

이는 유명한 청와대 서별관회의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탄생한 게 바로 ‘해외배출권’으로 1억t을 줄이자는 안이었다. 쉽게 말해 (6차 전기본 때문에) 기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우니, 외국에서 감축 활동한 분량을 한국의 실적으로 인정받겠다는 생각이었다. 책임자는 떠났고, 여기에 드는 비용만 남았다. 국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30년까지 해외배출권 조달에 9조원 내지 18조원이 필요하다. 한국환경공단의 계산은 그 이상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돈을 낼 것인가. 산업계와 발전업계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비용이 발생한 경위를 보면 화력발전사업자, 특히 6차 전기본의 혜택을 입은 주체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이들 사업이 전기본에 반영될 당시에도 한국 온실가스 목표는 분명했다. 사업자들은 향후 사업 제약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쉽게 눈감아 버렸다.

온실가스 의무감축분을 고려하지 않고 신규 석탄발전소를 대거 늘리기로 결정한 산업부에도 책임은 있다. 지금이라도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산업부는 화력발전, 특히 신설 화력발전이 해외배출권 책임을 부담하도록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해외배출권 비용을 세금을 통해 손쉽게 국민에게 전가하는 상황이다. 이는 포스코에너지, 삼성물산, SK가스 등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는 몇 개의 대기업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공정한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가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주진 | 변호사·(사)기후솔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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