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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실패작이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여 유통을 개선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킨 잘못된 정책이 되어 버렸다. 본래의 취지는 휴대폰을 구매할 때 소비자가 당할 수 있는 불리한 상황을 막고,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판매자가 소비자의 가입유형이나 요금제, 거주지역 등을 이유로 불공평하게 보조금을 차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단통법 제정의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소비자의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책정된 보조금 상한액이 단통법 시행 이전에 소비자들이 지원받았던 금액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다던 단통법이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휴대폰을 구매하게 만들어 대기업의 이익만을 보장해준 셈이다.

소규모 자영업자인 휴대전화 판매점들도 단통법 이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단통법 시행으로 충분한 보조금 지급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전국의 휴대전화 판매점이 3만개 이상이었고 관련 종사자도 30만명 이상이었는데, 이제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단말기 유통시장의 붕괴와 실업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단통법 이후 누구는 휴대폰을 저렴하게 구입하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그런 불공평함이 사라지는 대신에, 국민 모두 비싸게 사는 구조로 바뀌게 된 것이다.

왜 이 법이 문제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단통법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에 여러 가지 판매조건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남보다 비싸게 구입했던 소비자를 판매원들이 바보 고객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냐고 국회의원들은 분개했다. 이 같은 ‘저관여 소비자’를 입법활동을 통해 보호하겠다고 나선 결과, 더 저렴하고 좋은 조건의 제품을 고르려고 발품을 팔던 ‘고관여 소비자’까지 모두, 바보 고객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재래시장 가격과 백화점 가격이 동일하지 않다는 이유로 재래시장에서도 백화점 가격과 동일하게 판매하라고 정부가 강요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다.

시민단체 ‘컨슈머워치’ 회원들이 단통법 폐지를 위한 거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럼에도 정부는 단통법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정부가 말하는 효과는 일부 구형 단말기에만 집중됐을 뿐, 소비자의 불만은 높아만 가고 ‘내수 경제살리기’에도 걸림돌만 되고 있다. 또한 지금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보완책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있긴 마찬가지다.

시장 자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인데, 단순히 법으로 그때그때 따라가면서 규제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모순이다. 또한, 신기술 휴대폰을 개발하였을 때, 소비자의 반응을 실험할 시장을 잃어버린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손실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스마트폰 테스트베드로서 가치가 높았던 이유는 IT 시장 환경 조성으로 ‘얼리어답터 소비자’의 역할이 컸었고, 이와 같은 분위기 조성에 판매 지원금 효과가 한몫을 했던 게 사실이다. 정부가 출시 15개월 이전의 단말기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보조금 상한액 규제를 하기 때문에, 출고가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최신 폰은 더 이상 ‘얼리어답터 소비자’의 손쉬운 상대가 아니다. 결국 신기술 제품의 개발 주기가 느려지고 수출의 기술경쟁력도 약화될 우려마저 있다.

또한, 단말기 제조회사는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판매 보조금을 예상하여 일반폰과 고가폰의 국내 공급가를 일부러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게 책정해 운영하여 왔다. 그러나 단통법 이후, 거품 공급가는 눈감아주고 지원금만 축소했기에 단말기 제조회사와 통신회사와 같은 대기업은 팡파르를 울리고 판매 자영업자와 소비자는 독배를 마시는 결과를 초래했다. 불합리한 단통법은 소비자 보호관점에서 대대적인 방향전환이 이루어져 한다.


홍창의 | 가톨릭관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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