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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안전문가가 파괴시킨 보안원칙
직업윤리 부재 보여준 ‘파일 절도’
언론윤리 기본 저버린 ‘장물 방송’
디지털 맹신 시대의 슬픈 자화상


jtbc가 성완종씨의 인터뷰 녹음파일을 방송했다. 녹음파일은 경향신문이 독점 취재한 원본파일. 검찰 제출 과정에서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김인성씨가 복사해, jtbc로 유출된 것이다. jtbc는 알권리를 주장하며 이를 보도했고, 시청률은 두배나 올랐다. ‘상도의’를 저버린 jtbc의 행동도 문제지만 보안전문가인 김씨의 행동은 상식 이하였다. 정보보호를 철칙으로 삼고 있는 보안전문가가 기본원칙을 어기고, 복사파일을 외부에 유출한 것이다. 이는 절취한 ‘장물’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파일 절도사건’(?)은 해괴한 일이었다. 검찰에서 정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보안작업에 참여한 김씨는 통상적으로 기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외부에 파일을 유출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내용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는 내용일 것이다. 김씨는 경향신문 파일작업을 도운다며 자발적으로 참여해, 기밀유지 서약서까지 썼다. 설사 약식으로 절차가 이루어졌을 경우나 이 같은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해도, 파일유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 등 보안 선진국은 비슷한 경우 시스템을 통과하는 동시에 컴퓨터와 드라이브, 휴대폰, 기타 장비의 모든 디지털데이터가 영구적으로 삭제되도록 한다. 뒤탈이 없도록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가 3자에게, 그것도 경쟁 방송사에 파일을 넘긴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는 스스로 보안전문가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물론 파일을 받아간 기자가 중간에 그런 ‘치사한’ 특종 가로채기를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디지털포렌식은 ‘디지털 기기에 적용하는 법의학 혹은 컴퓨터나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저장 매체 또는 네트워크 상에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국내에서는 2007년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당시 신정아씨가 변양균씨에게 보낸, 삭제된 100여개의 연서(戀書) 메일을 복구하면서 디지털포렌식이 일반에게 알려졌다.

2012년 ‘성추문 검사 사건’ 때도 검사와 여성이 성관계 도중 대화한 휴대폰 녹음파일을 복원했고, 세월호 사고 때도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휴대폰 대화 내용을 복원해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들을 제공했다. 일반인들의 경우 컴퓨터에 있는 파일을 삭제하면 그 파일이 영원히 없어진 것으로 착각한다. 이 경우에는 하드디스크에서 삭제되는 게 아니라 디스크에 들어있는 파일에 단지 삭제되었다고 표시만 될 뿐이다. 따라서 삭제 표시파일에 새 파일을 덮어씌우기 전에는 언제든지 복구가 가능하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이번 일은 보안전문가의 보안불감증과 직업윤리의식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사건이다. 언론윤리를 망각한 jtbc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보안전문가들은 착잡하고 안타깝다. 이번 일은 문서, 오디오, 비디오 등 매체에 상관없이 전자로 기록되는 모든 데이터, 위성항법장치(GPS) 이용 차량운전, 휴대폰 통화 등 모든 디지털 흔적을 쫓아 수사하는 디지털포렌식 전문가들의 도덕성과 신뢰,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일부에서는 “행여 돈에 매수당하거나 사적인 감정에 치우쳐 증거 삭제, 누락, 편집, 조작을 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수사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프라이버시와 보안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디지털 동영상이나 증거물, 데이터들이 외부로 흘러나와 만인의 공유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 섞인 걱정을 하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적 삶이 점차 디지털화되는 과정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삶의 주체로서 힘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시스템에 점차 종속되어 가면서 힘과 권력을 박탈당한 채 점차 주체가 아닌 종속적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다. 또 디지털 마법이 가져다주는 이면에 인간성 상실, 즉 윤리 의식과 도덕성 부재라는 디지털 역병(疫病)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사악하고 탐욕적인 우리의 정체성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디지털 자아를 창조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면서 디지털 혁명을 완성한 위대한 디지털 황제였지만 그는 첨단기술과 물질만능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디지털 혁명의 이면에 있는 그림자, 디지털이 가져다주는 역병과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부나 권력, 명예, 인기 혹은 시청률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죽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까지.

그가 남긴 한마디 말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고 잠시 생각을 멈춰볼 때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최희원 |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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