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황원규 | 강릉원주대 사회과학대 교수


 

희망이 목전의 이익에 묻히는 곳이 선거판이다. 선거에서는 투표권 없는 어린이를 위한 정책보다 투표권 있는 노인 지원 대책이 중시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중요한 국제문제도 선거 공약으로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2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주최로 제18대 대선후보초청 국제개발협력 공약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그러나 각 진영 정책담당자들의 답변을 들은 시민사회는 실망을 금하지 못했다. 미리 배포한 질문에 대해 성의껏 답변을 해온 분은 한 명뿐이고,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달리고 있는 두 진영의 담당자들은 답신도 준비하지 않고 나타나는 무성의함을 보여 주었다. 문제는 무성의함뿐 아니라 모든 진영이 국제개발협력정책에 대한 명확한 공약도 제시하지 않고 있고, 전문가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바라는 새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방안은 무엇인가?


(경향신문DB)


 첫째, 국제사회에 약속한 지원금액을 차질 없이 이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원조액은 우리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기여율은 DAC 회원국 중 꼴찌이고, 2012년 예산 기준 지원액도 약정한 0.15%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추세라면 2015년까지 국제사회에 약속한 0.25% 지원이 요원해 보인다.


둘째, 원조의 내용 및 구성의 개선 방안이다. 현행 한국의 유상 및 구속성 원조 비율은 원조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다. 중점지원 대상국도 원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최빈국보다는 자원이 많은 저소득국이나 하위 중소득국에 치중돼 있다.


셋째, 원조집행방식의 개선이다. 특히 시민사회를 배제한 정부 주도의 개발협력은 북유럽의 개발협력 선진국들의 경우와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원조체계의 정비이다. 한국은 서구 공여국들이 수십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다른 결론을 무시한 채 그들이 이미 폐기한 과거의 제도를 ‘한국형 원조’라는 미명하에 존속시키고 있는 이상한 나라이다. 영국, 독일, 일본 등은 과거 여러 기관이 나누어 집행했던 원조를 21세기 들어 한 기관으로 통합하는 추세임에도 우리는 개발협력을 국제사회에서는 분류하지 않는 유·무상으로 나누어 놓은 채 기획재정부와 외교통상부가 양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은 최종 수혜자가 국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개발협력이다. 이 돈은 곤궁한 시절 우리가 받았던 국제사회의 도움을 되갚는 보은의 손길이고 세상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신성한 자금이다. 이렇듯 신성한 돈이 부처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정부 부처들은 저마다의 논리를 내세워 자기가 개발원조의 최적 기관임을 주장하거나 ‘한국형 원조’라는 명분으로 논지를 흐리고 있다. 심지어는 국제개발협력법에서 규정한 유·무상 간 정책조정 권한도 부처 이기주의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개발협력의 집행 방법은 이미 정답이 존재하고 있다. 국제규범에 따라 기관을 설계하고 집행하면 된다.


어쩌면 2013년 초 새 정부가 출범할 시점이 한국 원조행정을 선진화된 구조로 통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세 후보는 국제규범에 의한 통합원조체제를 구축하고, 국제사회에 제시한 원조 증액 약속을 준수하는 정책을 대선 공약으로 천명할 것을 촉구한다. 개발협력정책은 이해당사자들이 최빈국의 빈민들이기에 선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최빈국의 빈민들을 후원하고 있는 300만명의 열정적인 유권자들이 세 후보의 개발협력 공약을 조용히 지켜보고 한 표를 행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