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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분신 42주기를 맞은 어제 서울의 아침 기온이 0도로 떨어졌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23명의 희생자를 낸 쌍용자동차 사태 관련자들이 8개월째 천막농성을, 김정우 지부장은 35일째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비정규직노조원 최병승·천의봉씨가 28일째 고공농성 중이었다. 갑자기 뚝 떨어진 수은주처럼 추락할 대로 추락한 노동 현실을 이들이 온몸으로 웅변해준 하루였다. 어제 경향신문이 기획 보도한 ‘노동 없는 대선’은 이런 비극적 노동 현실에 더해 노동의 미래마저 어둡게 전망하고 있어 더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정치권이 대통령 선거에 몰두하면서 시급한 해결을 요하는 노동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국민 관심권에서도 벗어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서는 민주통합당이 국정조사 실시를 당론으로 정하고 국회에 요구서를 제출했지만 새누리당이 받지 않고 있다. 현대차 사태는 특별교섭이 진행되고 있으나 노사 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철탑농성이 대선을 넘길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쌍용차 희생자 추모 및 해고자 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어제 새누리당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후보 낙선운동을 선언하고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17~18일 철탑농성 현장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예고하고 있지만 대선국면에서 주목을 끌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경향신문DB)
이처럼 노동현안이 외면되는 대선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노동현안 해결 의지 없이 내놓은 후보들의 노동정책은 진정성이 부족하고 노동정책이 뒷전으로 밀려난 장밋빛 공약은 공허할 뿐이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이자 양극화의 해법으로 꼽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노동 문제의 근본적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모두 정년 연장, 비정규직 처우 개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 시혜적 노동정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노동 부재’ 우려를 더하게 한다. 노조 조직률 강화, 노동운동 활성화 등 노동권 보장을 통한 구조적 해결책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노동 없는 대선’은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진영과 노동계가 분열한 데서 비롯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노동이 있는 복지, 노동권이 보장되는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후보 진영은 시급한 노동현안부터 관심을 갖는 게 먼저다. 마침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공동 협약’을 제안하면서 노동현안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는 당면한 실천 연대 사항으로서 정리해고 없는 쌍용차, 비정규직 없는 현대차, 백혈병 없는 삼성전자 등 시급한 노동현안 해결을 위한 ‘노동현안해결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천막에,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를 철탑 위에 둔 채 치르는 대선에 노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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