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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신은 낡은 구두의 사진이 확대되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정부패 권력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낡은 구두가 보여주는 검소한 정치인의 모습에 반응했다. 그리고 더욱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그 구두가 청각장애인들이 모여 만든 사회적기업의 구두 브랜드 ‘아지오’의 제품이라는 것이었다. 2012년 가을 국회에서 아지오 제품이 판매됐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산 구두이다.
아지오는 2013년 폐업했다. 아지오의 전 대표 유석영씨는 인터뷰에서 장애인들이 만든 구두는 품질이 낮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구두가 잘 팔리지 않아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통령의 낡은 구두에 대한 관심은 아지오가 재기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으로 바뀌었다. 유씨는 청각장애인들의 안정된 일자리 마련이라는 취지로 아지오 ‘구두 만드는 풍경’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총회를 11월14일에 개최했고 아지오펀드를 통해 초기 운영자금을 조달 중이다.
나는 몇 년 전 장애인협회에서 후원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기부를 하고 장애인들이 만든 비누를 받는 후원이었다. 많은 양의 비누가 필요 없었던 나는 돈만 기부하고 비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장애인협회 활동가는 장애인들도 일해야 하며 장애인이라고 노력도 없이 기부를 받으면 자존감을 잃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만든 비누를 받아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의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고 비누를 받아 주위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소중히 썼다. 동정에 의한 기부를 받기보다는 장애인들도 일할 기회를 얻고 일의 결과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일터가 장애인들도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의 터전이 되고 사회와 자신들을 연결시켜 주는 통로가 될 것이다.
사회적기업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사회적기업은 장애인들이나 사회의 취약계층이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다. 2007년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은 사회적기업을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사회 서비스 혹은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 주민의 삶의 질에 기여하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리활동을 하는 기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육성법에서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은 기업을 조건으로 하고 있으나, 인증 여부가 사회적기업을 규정할 수는 없으며 인증의 필요성과 등록제로의 전환에 대한 문제제기가 진행 중이다. 사회적기업 육성정책은 사회적기업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사회적기업의 성장 정체, 소셜벤처와 글로벌 청년 사회적기업의 참여 저조 등 인증 중심의 사회적기업 육성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만 열 살이 된 사회적기업 육성정책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아지오의 폐업이 그 단적인 예이다. 사회적기업의 성장은 사회적기업에 가치를 부여하는 인식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며 소비자들이 사회적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해야만 한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소비자의 구매 없이 정부 주도형 인증제도를 통한 형식적이고 단편적 지원만으로는 다양한 사회적기업의 육성과 자생적 성장은 불가능하다. 사회적기업 육성정책과 TV 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진행되었던 사회적기업에 대한 광고는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엑스맨 시리즈로 유명한 휴 잭맨이나 에마 왓슨, 제시카 알바 같은 해외 유명 연예인들은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거나 창립했다. 이들이 사회적기업을 알리고 소비자의 구매를 촉진시킨다는 점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유시민 작가와 가수 유희열이 구두 한 켤레를 받기로 하고 이번에 재기한 아지오의 모델이 되었다. 완판 스타나 아이돌 스타들이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공항 패션에 선보이고, SNS에 자랑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캐롯몹(carrotmob)은 한시적으로 친환경적이거나 친사회적인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소비자들이 집단적으로 구매하여 기업을 돕는 행위이다. 아지오에 벌써 선주문이 들어오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이런 행동들이 풀뿌리로 조직되어 사회적기업을 돕는다면 많은 사회적기업이 창업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대통령의 낡은 구두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고 사회적기업의 가치와 착한 소비를 통해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적 정신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황금주 |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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