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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이래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적이 있을까? 교육이 바뀌기 위해 먼저 교사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20년째 들려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학교가 정말 바뀌었고,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정권 교체 이후 학교 혁신, 교육 혁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드높게 들려온다. 실천을 통해 숙성되지 않은 설익은 용어들이 구호가 되어 현장에 난무한다. 그런 구호들은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혁신을 위한 혁신을 노래하면서 교육 혁신을 희화화하고, 결국 교육 혁신이 스스로의 모순 속에서 무너지게 만든다.

가령 ‘학생 중심 교육’이 그렇다. 이 말의 원래 뜻은 학생이 교육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소외되었기 때문에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육을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구호가 되면서 교사(공급자)와 학생(수요자)의 위치를 바꾸어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가야 한다는 뜻으로 바뀌면서 교사에게 냉소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 교사들 중 누구도 교육의 중심에 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중심에 서 본 적이 없는 교사들에게 학생을 중심에 둘 힘이 있을 리 없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이분법적으로 ‘교사 중심 vs 학생 중심’의 구도를 그리고 학교에 강요한다면 혼란 아니면 문서상의 혁신만 남게 될 것이다.

‘질문이 있는 교실’도 그렇다. 그동안 학교에서 질문은 교실은커녕 교무실에서도 철저히 금지되었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질문할 수 있지만, 교사는 교장에게, 교육청에 질문할 수 없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질문을 할 수는 있지만 교사의 질문에 대한 교장이나 교육당국의 태도가 동문서답 아니면 마이동풍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사들은 질문의 힘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질문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교사들은 민주시민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허용되어도,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좋아하는 정치인의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 한두 개 달았다고 처벌과 징계의 위협을 받는다. 이런 반쪽짜리 시민에게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시민을 기르라고 요구하고, 반쪽짜리 시민에게 학교를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민주적 공동체로 만들라고 요구하니 이게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있어 본 적이 없는 중심에 학생들을 옮겨 놓아야 하고, 해본 적이 없는 질문을, 자기도 누리지 못하는 민주시민의 권리를 가르쳐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서 있다. 학교 혁신은 별게 아니다. 확 바뀐 학교에서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을 교사들이 먼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게 좋은 것을 아는 교사들이라면 당연히 학생도 그렇게 이끌 것이다. 선생이 뭐 별것인가? 문자 그대로 먼저 살아봤기 때문에 선생이다. 선생은 먼저 살아본 것을 가르친다. 살아보니 좋았고, 그래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보지 못했고, 좋았음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그걸 가르치라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나는 바담 풍 너는 바람 풍인 것이다. 더 이상 교사들을 거짓말쟁이로 내몰지 말자. 학교 혁신을 우스개로 만들지 말자. 교사가 학교의 중심을 경험하게 하자. 교사가 질문의 힘을 경험하게 하자. 그리고 교사가 민주시민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이 셋이 해결되지 않은 채 쏟아지는 어떤 학교 혁신, 교육 혁신 정책도 텅 빈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평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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